10세 미국 대학생’ 쇼의 엄마 진경혜
“천재 아들을 키워낸 보통 엄마의 특별한 교육방법을 공개합니다” 만 아홉살에 대학에 입학, 미국의 최연소 대학생이 된 쇼 야노군. 그에게 쏟아지는 전세계의 관심이 뜨겁기만 하다. 쇼군의 별명은 ‘리틀 아인슈타인’. 네살에 간단한 피아노 연주를 외워서 하고, 여섯살에 시를 썼으며, 지능지수는 200이 넘는다는 것만 나오고 측정 불가능이라는 이 천재소년 뒤에는 아들의 재능을 발견하고 남다른 도움을 준 엄마 진경혜씨의 헌신과 노력이 숨어 있었다.
안경을 낀 동그란 얼굴, 자그마한 덩치에 웃는 얼굴이 귀여운 쇼 야노(10)를 본 건 2000년 한 방송국의 TV 뉴스 프로그램에서였다. 제 덩치의 2배가 넘는 어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수업을 듣고, 실험을 하는 동양 소년에게는 ‘미국 최연소 대학생’이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었다.
“저는 목표가 있답니다. 목표를 이루지 못하는 것이 가장 불행한 삶이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저를 천재라고 생각하는 것을 정말 좋아하지 않아요. 신에게서 남보다 조금 더 많은 재능을 선물로 받은 것이죠. 그래서 절대 그 재능을 허비하지 않으려고 해요.”
미국 CBS뉴스와의 인터뷰 모습은 열살 소년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의젓했다.
야노군은 만 아홉살에 미국대학수능시험격인 SAT에서 1천6백점 만점에 1천5백점을 받아 미국 언론을 놀라게 했다(참고로 조지 부시 미국대통령은 1천2백6점을 받았다고 한다). 지난해 시카고 로욜라대 생물학과에 입학한 쇼는 4.00 만점에 3.97점이라는 학점을 받았다. 53학점 가운데 한 과목만 B일 뿐 전부 A학점이다.
최근 국내에 야노군의 성장체험이 담긴 책이 발간되어 눈길을 끌고 있다. 저자는 어머니 진경혜씨. <나는 리틀 아인슈타인을 이렇게 키웠다>는 제목의 책에는 ‘혹시 쇼가 천재가 아닐까’ 생각했던 당시의 이야기부터 ‘천재’라는 진단을 받은 후 영재학교에서의 생활, 그리고 대학에 입학하기까지의 과정이 비교적 상세하게 담겨 있다. 이 책의 장점은 교육에서 부모의 역할은 무엇인지 되묻게 한다는 점이다. 남과 다른 아들의 재능을 일찍이 간파하고 이를 키워주기 위해 기울인 진경혜씨의 노력은 조기 교육이다 뭐다 하면서 아이들을 학원이다 레슨이다 내몰기에만 바쁘고 정작 ‘아이들’에게 기울이는 관심은 적은 이 땅의 부모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배우지도 않은 피아노를 네살때 연주해 ‘천재’ 판정 받아
야노군이 천재가 아닐까 주목을 받기 시작한 때는 네살 때. 그전까지는 특별히 두드러지는 면은 없었다. 생후 28개월부터 글자를 알게 되면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였지만 처음에는 그저 ‘똑똑한 아이려니’ 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어머니가 연주하다가 포기한 쇼팽의 멜로디를 외워서 치고 있었던 것. 그전까지 피아노를 전혀 배운 일도 없었기에 어머니 진씨의 놀라움은 컸다. 테스트받기 위해 인근 음악원에 간 야노군은 한번도 배우지 않았던 모짜르트의 미뉴에트를 변주해가며 즐겁게 피아노를 쳤다. 테스트를 맡았던 교수는 흥분하며 “야노군은 음악 천재’라고 했다. 그리고 네살 봄 사립초등학교 입학 테스트를 위해 찾아갔던 야노군과 부모는 교장으로부터 영재학교 입학을 권유받는다. ‘꼬마 천재’ 탄생의 순간이었다.
다섯 살에 영재학교에 입학한 쇼는 그곳에서도 월반을 거듭한다. 수학, 영어, 문학, 음악을 비롯해 다방면으로 탁월한 아이. 그러나 진씨는 영재학교에 입학시켰다고 해서 아들 교육에서 손을 떼지는 않았다. 그건 ‘아들의 성장 발달 과정을 가장 정확히 판단할 수 있는 건 부모밖에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아들의 교육과 장래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눈 끝에 진씨 부부는 8세 무렵 이미 모든 과목에서 고등학교 수준이라는 시험 결과를 받은 야노군을 집에서 직접 가르치기로 마음 먹는다.
“제가 잘나서 아이를 가르치겠다는 게 아니었어요. 그러나 영재학교도 이미 쇼의 진도를 맞춰주기 어려운 상태였거든요. 그렇다고 쇼 하나만을 위해 따로 프로그램을 만들어달라는 것도 상식에 어긋나는 일이니까요. 그리고 이미 쇼는 영재학교를 다닐 때부터도 저와 함께 홈스쿨링을 계속하고 있었어요”
홈스쿨링이란 정규학교에 보내지 않고 부모가 직접 가르치는 형태의 교육. 현재 미국에서는 2백만 가까운 아이들이 홈스쿨링으로 교육을 받고 있다. 대부분의 주에서 홈스쿨링을 제도적으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1~2년 홈스쿨링하다가 다시 정규 학교로 보내는 일도 간단하다. 매년 주에서 실시하는 학력평가 시험을 치르기 때문에, 원한다면 얼마든지 자기 수준에 맞는 학년으로 편입할 수 있다.
“부모는 교육에 관한 한 학교나 사회와 맞먹을 정도의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보면 홈스쿨링은 별난 제도가 아니죠.”
아이의 학습진도가 빠르거나 또는 부진할 때 학교 교육과 더불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게 홈스쿨링의 장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홈스쿨링을 하는 엄마는 다른 엄마와 달리 ‘자기 시간’이 전혀 없다. 홈스쿨링 자료를 모으고 교재를 검토하고 아이에게 맞는 커리큘럼을 짜고 수업을 해야 한다. 진씨는 인터넷을 통해 자료를 모으고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다 읽으며 아이에게 맞는 커리큘럼을 짰다. 미국에는 홈스쿨링 교재나 가이드북도 많이 나와 있지만, 지적 능력이 탁월한 야노군을 위해 진씨는 자신만의 커리큘럼을 만들기도 했다고.
1백권의 책을 사주기보다 10권의 책을 1백번씩 읽어줘라
“아이와 대화만 충분하다면 엄마야말로 전문가죠. 아이의 장단점을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으니까요. 따라서 어떤 교육을 시켜야할지 누구보다 잘 알게 돼요. 거기에서부터 출발하는 거죠. 한국은 홈스쿨링 시스템이 잘 되어 있지 않지만 유치원 단계에서는 엄마들이 얼마든지 해줄 수 있을 거예요. 이때 중요한 건 글자 익히기, 숫자계산등에 얽매이기보다는 배우는 즐거움을 느끼도록 해줘야 해요.”
진씨는 교육학 전공자는 아니다. 서울에서 자라 고교 졸업 후 미국 오하이오대학에서 미술과 미술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일본인 남편을 따라 일본에 머무는 동안 1년 반동안 영어교사로 일한 경력이 전부인 전업주부. 그러나 그는 배움은 부모로부터 시작된다고 믿고 배움에 대한 호기심이 식지않는 자유롭고 평화로운 교육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면서 그가 택한 방법은 ‘아이보다 반 걸음만 앞서가기’.
미술학원에 보내는 대신에 집에서 아이와 핑거 페인팅, 찰흙 공작, 그림 그리기를 같이 하면서, 또 여행을 다니면서, 책을 읽고 대화를 나누면서 모든 일상을 알게 모르게 교육과 연관시켰다. 가장 주목할 만한 건 TV 보는 시간을 줄이고 ‘저녁 수다 시간’을 가졌다는 점. 가족 모두가 참여하는 이 수다 시간이야말로 아이들에게 사랑과 관심을 받는다는 느낌을 갖게 해주고 자긍심을 북돋워주며, 적극적인 태도를 갖게 한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가장 효과적인 것은 역시 ‘책 읽기’였다.
진씨는 아이가 생후 6개월이 됐을 때부터 하루 10권씩 책을 읽어주었다. 글자가 큼직하고 누르면 뿅뿅 소리가 나는 토이북 부터 시작했다. 아이에게 1백권의 책을 사 주기보다 정성을 기울여 고른 책 10권을 1백번 읽어주려고 노력했던 점이 남달랐다. 그는 아이에게 시간을 많이 낼 수 없는 일하는 엄마나 아이들이 책을 싫어한다고 걱정하는 엄마에게 “잠들기 전에 꼭 한권이라도 읽어주고, 매주마다 할 수는 없겠지만 자주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서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버릇을 들이라”고 조언한다.
“책의 가짓수는 중요하지 않다고 봐요. 한권이라도 좋은 책을 골라 읽힌 후 아이와 같이 앉아 책이 주는 의미나 기타 의견을 나눠가며 분석하도록 유도하는 게 더 교육적 효과가 크죠. 쇼만 해도 책을 읽는 걸 좋아하지만 몇 천권을 읽거나 한 건 아니거든요. 오히려 같은 책을 반복해서 읽을 때가 많았어요. 대신 읽은 책 중 몇 권에 대해서는 독후감을 쓰더군요. 이렇게 길러진 능력이 지금 대학 공부에서도 도움이 되고 있답니다.”
책을 읽은 후 한 두줄의 메모나 그림일기를 쓰는 버릇은 꼭 들이라고 조언한다. 그것이 점차 발달하면서 일기가 되고 수준 높은 작문이 된다. 세살부터 줄곧 이렇게 해온 야노군의 논문 쓰는 실력은 발군이다.
이렇게 책을 읽는 걸 즐기다보니 야노군은 또래 애들이 즐기는 TV나 만화영화등에는 도통 관심이 없다. 야노군이 좋아하는 건 <시카고트리뷴>이나 <월스트리트 저널> 같은 신문들.
“한번은 엄마가 ‘아이들은 이런 걸 봐야 한다’면서 만화영화 <포켓 몬스터>를 보게 했는데 싸우는 장면이 너무 많이 나와 머리가 아팠어요. 반면에 신문은 정보가 많아서 아주 마음에 듭니다.”
그렇다고 야노군이 책만 들이파는 ‘공부벌레’이거나 자기 자신의 일에만 몰두하는 괴팍한 천재라고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태권도, 수영, 농구를 즐기며 다섯살 난 동생 사유리와 노는 걸 “세상에서 제일 즐겁다”고 말하는 ‘평범한’ 소년. 사교성도 좋아 열살 이상 연상인 대학교 친구들과도 잘 지내며 유머감각도 풍부하다. 2001년 12월 CBS의 대담 프로그램에 나간 야노군은 “네가 받은 가장 혹독한 벌이 뭐냐?”는 질문을 받았다. 여기에 대해 그는 “엄마가 하루 종일 책을 못 읽게 하는 일이에요”라고 답하며 이어서 “엄마가 책을 못 읽게 하면 전 시리얼에 붙어 있는 영양분석표라도 읽어요”라고 대답해서 좌중을 웃게 만들었다.
이렇게 쇼가 정서적으로나 지적으로나 나무랄 데 없는 아이로 큰 데는 “남들이 쇼에게 사회성이 뛰어나고 정서가 안정되어 있으며 남에게 감사할 줄 아는 아이라고 평가해주는 게 ‘천재’라는 평가보다 더 기쁘다”는 엄마가 있었기 때문이리라 추측해 볼 수 있다.
쇼는 앞으로 의과대학원에 진학할 생각이며 유전학을 공부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의예과를 마치면 곧바로 의과대학원과 유전학 박사과정을 함께 마칠 수 있는 M.D/Ph.D프로그램에 들어가 학업을 계속할 예정이다.
영재·조기교육을 학교나 사회에만 맡기지 말자
진씨는 요즘 야노군의 동생 사유리도 홈스쿨링으로 지도하고 있다. 다섯살 난 사유리도 오빠와 아주 비슷한 학습능력, 음악적 재능, 그리고 포토그래픽 메모리(한번 본 것은 절대로 잊어먹지 않고 그대로 기억하는 탁월한 기억력)를 타고났다는 평가를 받은 것.
“비슷한 점도 있지만 둘이 다른 점도 많아요. 사유리는 긍정적이고 밝은데 너무 자신만만하다고 할까? 섣불리 시작하다가 실수가 많은 타입이고요. 쇼는 한 과제를 주어도 시작하기 전에 잘 관찰하기 때문에 일단 풀어놓은 문제는 실수가 없어요. 대신 사유리는 꾀가 많고 엉뚱한 면이 많아서 우리 집에서는 ‘코미디언’으로 불릴 정도예요. 이런 차이점을 주의깊게 보면서 아이들을 대하고 있어요.”
그러나 이른바 ‘천재’아이들을 기르는 일이 쉽지만은 않을 터. 아이가 성장하면서 다음 단계에 무엇을 해주어야 하나 판단하고 개척하는 어려움도 컸지만, 그보다 더 힘든 것은 주위의 시선이나 간섭이었다. “애들은 애들답게 키울 일이지…”부터 시작해서 “내내 책상 앞에 붙들어두고 공부를 시킨 거 아니냐”는 등 그를 ‘극성엄마’로 단정짓는 반응들은 진씨를 무척 불편하게 만들기도 했다고.
“부모 욕심 때문에 아이를 희생시킨다는 식의 이야기를 들으면 당연히 화가 나죠. 하지만 이젠 괜찮아요. 한 귀로 듣고 흘릴 정도가 됐어요. 육아에서 중요한 건 부모의 일관성이에요. 제가 우왕좌왕하면 아이들은 더 힘들잖아요.”
그러나 그와 얘기를 나누다보니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쇼가 한국에서 태어났더라도 지금처럼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까? 이에 대해 회의적이라는 기자에게 진씨는 명쾌한 답변을 해주었다.
“글쎄요. 한국에서 자랐다면 달라졌을까요? 물론 더 어렵고 힘든 점은 있겠죠. 하지만 교육은 꼭 사회나 학교에서만 이뤄지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부모의 책임이 무엇보다 크지 않을까요? 언젠가 한국의 영재 아이들의 수업태도를 볼 일이 있었는데, 그때 저는 그 아이들이 아무리 좋은 미국의 영재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더라도 마찬가지일 거란 인상을 받았어요. 배움에 대한 겸손함이 크게 결여되어 있더군요.”
마지막으로 한국에서 불고 있는 조기유학 열풍에 대해 그의 의견을 물었다. 진씨는 “조기 교육을 안하면 놓쳐버리는 재능도 있어요. 따라서 조기 교육 자체에 관심이 많다는 건 바람직한 일이죠”라고 전제하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가장 중요한 건 아이의 발달상황이나 특성을 파악하는 일이지요. 그런 전제 없이 그저 남들이 한다고 우르르 몰려다니는 식의 조기교육이라면 성공률이 낮아집니다. 특히 선생님을 잘 만나야 하는데, 어린 아이들에게는 유명한 선생님이나 학원보다는 아이를 정성껏 지도하고 아이의 발달상황을 잘 체크해주는 분을 만나는 게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해요. 또한 교육을 선생님에게만 맡겨두어서는 안됩니다. 조기교육은 선생님과 보호자가 발목을 묶고 한 팀이 되어 달리는 2인 3각 경기라고 생각하니까요.”
‘우리는 자식이라도 우리의 소유물이 아니기 때문에 존경과 사랑으로 길러야 한다는 신념으로 최선을 다해왔다. 또한 배움은 부모로부터 시작된다고 믿고, 아이들이 배움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이 식지 않도록 자유롭고 평화로운 교육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을 뿐이다.’
너무나 당연해서 도리어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이 문구는 자녀교육의 원칙을 새삼 되새기게 만든다. 위대한 ‘천재’ 뒤에는 위대한 ‘엄마’가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진씨는 다시 한번 증명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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