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할아버지와의 추억.
일제시대에 일본에 가서 탄광에 가셨던 외할아버지는 자수성가한 스타일이었다. 많은 이야기보다 현실적으로 중요한 몇 마디만 말씀하셨다. 그땐 몰랐지만 꼭 알아두어야 했던 이야기들이었다. 지식을 많이 알려주지 않으셨지만, 많이 욕심내지 않고, 스스로 땀 흘려 농사를 짓고, 절약하는 모습을 보여주셨다. 살아가다 보면, 욕망에 솔깃해서, 더 큰 욕심을 위해 다른 것들을 외면하려는 생각이 마음이 스미기도 한다. 땀 흘려 일하시는 모습이 마음에 보석처럼 남아, 나쁜 선택을 하지 않도록 도와주었음을 깨달았다. 진부한 할아버지와의 추억을 꺼내는 이유는 첫째, 『할아버지 무릎에 앉아서』라는 책의 저자가 할아버지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할아버지가 살아 지혜로운 말씀을 하신다면, 이런 이야기를 하셨을 거란 생각이 읽는 내내 떠올랐기 때문이다.
# 어렸을 때, 할아버지에게 묻고 싶던 질문들이 담겨있다.
아이들이 손글씨로 질문한 내용을 저자인 할아버지가 손글씨로 하나하나 답을 했다. 손으로 쓴 마음들이 오고가며 쌓여간 따뜻함이 가득한 책이다. 집중력, 변덕스러운 마음, 계획을 지키지 못하는 자신, 커서 뭘 하게 될지 궁금하다는 등 아이이기에 할 수 있는 많은 질문들이 동심의 마음으로 돌아가게 했다. 어른이 되어가면서 호기심을 가지고 누군가에게 질문하는 일을 잊고 산다. 질문을 해 봐야 들리지 않는 답변에 지친 마음이 오랜 시간 쌓였기 때문이다. 질문을 할 여유와 낭만이 사라진 자리에는 권태와 우울의 기운들이 일상을 차지한다.
어렸을 때, 부모님과 다른 어른들에게 물어보았지만, ‘몰라도 돼, 나중에 크면 알게 될 거야’라는 대답만 들었던 질문들의 답변들은 내 안의 어린아이를 다독이게 했다. 할아버지가 어떤 대답을 할지 궁금한 마음이 들었다. 읽어갈수록 다음이 궁금한 책을 만나기 어렵다. 읽을수록, 어떤 이야기로 아이에게 대답을 해 주었을까 기대하게 만드는 책이다.
# 친절한 할아버지의 대답에는 지혜가 스며있다.
질문을 대하는 대답의 시선이 좋았다. ‘그래, 당연히 그런 질문을 할 수 있어.’ ‘할아버지는 이렇게 생각해’로 이어지는 친절한 답변에는 아이를 한 사람의 인격으로 존중하는 지혜가 스며있다. 무슨 일을 하다가 싫증이 나면 금방 그만두게 된다고? 그게 뭐 어때서? 싫증이 나는데도 억지로 계속하는 것보다는 그만두는 게 훨씬 낫다고 나는 본다. ... 네가 하고 싶고 하면 할수록 재미있는 ’일’을 찾아서 그 일을 하면 될 것 아니냐? .. 요즘은 사람마다 개성과 취향을 존중하는 쪽으로 세상이 바뀌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야? 그점에서 너희가 우리보다 행복하게 살 가능성이 더욱 많고 따라서 세상은 지금보다 더욱 좋아지고 재미있어질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우선 계획을 세웠으면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빈틈없이 그대로 해야 한다는 생각부터 버리는 게 좋겠다.
내가 별 짓 다해도 남의 마음을 내 맘대로 돌리거나 바꿀 수는 없는 일이거든. 많은 사람이 이 점을 잘 모르는 것 같더라. 그래서 내가 이렇게까지 했는데 왜 내 마음을 몰라주고 내가 원하는 대로 해주지 않느냐고 화를 내거나 상대를 미워하기까지 하는데, 그것은 사과나무한테 배를 내놓으라고 하는 것만큼이나 억지를 부리는 거야.
내가 보기엔 넌 바람직한 질문을 하고 있다. 그래, 그 질문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렴. 그것이 너를 훌륭한 사람으로 이끌 테니까.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은 네가 찾은 ‘대답’이 아니라 그의 가슴에 묻혀있는 ‘질문’이라고 나는 생각해.
"사람이 잘못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그것을 감추고 고치려 하지 않는 것이 진짜 잘못이다."라는 옛말이 있단다. 우리 모두 ‘진짜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사람이 되어보자꾸나.
탄복할 만한 특별한 대답은 없다. 쉽게 다가서는 여유로움과 따스함이 가득한 책이다. 한 호흡에 읽어보게 하는 화법이 인상적인 책이었다. 아이의 질문에 답할 때, 어떤 시선에서 답해야 하는지, 내가 잊고 사는 질문이 무엇이었는지 확인한다.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은 그의 가슴에 묻혀있는 질문이라는 말이 아직도 가슴에 남아있다. 살아가면서 고민해야 할 질문과 대답을 얻을 수 있어 독서하는 시간이 즐겁다.
환경을 생각해 숲을 살리는 재생종이를 쓰고, 표지에 코팅을 하지 않은 책이기도 하다. 국내 종이 사용량의 24프로가 책을 만드는 데 쓰인다. 재생종이를 사용하는 책이 더 많아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런 점에서 환경친화적인 책이기도 하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비이님'은? ‘책 속에 엄한 스승과 두려운 벗이 있다. 읽는 사람이 진부한 말로 보아버리는 까닭에 마침내 건질 것이 없을 따름이다’ (정민,「영단」,『죽비소리』, 마음산책). 막힌 눈과 귀를 열기 위해, 책의 바다에서 열심히 물장구 치는 초보 독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