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멀리서 온 이땅의 사이킥델리


시작하자마자 리버브(음향 장치로 소리의 울림을 좋게 하기 위한 에코) 머금은 기타가 공간감을 둘러친다. 잠시 후 드럼이 리듬을 때려대자 그때부터 기타는 슈우웅~ 우주로 날아가 버린다. 1절이 끝나면 들려오는 만돌린의 멜로디, 2절이 끝나고 들려오는 기타 솔로의 옛날 맛! 서울전자음악단의 작심은 첫 곡 「고양이의 고향노래」에서 이미 실현된다. 사이키델릭의 황홀한 무드가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러나 첫 곡은 그저 예고편. 디스토션 덩어리로 시작하는 「종소리」가 이내 강력한 리프를 긁어대면 사로잡힌 마음은 환호성을 지른다. 미니 무그가 위잉위잉 날아다니고 신윤철은 저만치 뒤에 앉아 웅얼웅얼 노래한다.

“종이 울리고 무지개 / 피어나고 새들이 / 노래하고 하늘로 / 날아올라 저 높이” 이렇게 어절을 모두 끊어놓는다는 건 가사야 어찌됐든 사이키델릭을 즐기란 얘기다. 곡은 2/3 지점에서 리버브 먹은 기타와 고조되는 드럼의 양강 체제로 전환되는데, 신윤철의 기타 톤은 그야말로 발군이다. 이 두 곡으로 이미 심장 박동수는 ‘만땅’. 그런데 이어지는「언제나 오늘에」는 기어코 이걸 터뜨리고 만다. 기타의 극단적인 딜레이가 찌지지징 신경을 자극하고 밑에서는 오르간이 날카로운 타건을 계속한다. 그 후에 터지는 날렵한 리프(짧은 악구를 계속적으로 되풀이 연주함)! 이 리프, 100번 들어도 질리지 않는 바로 그런 리프다. 역시 무그는 위잉거리고 가사는 같은 말을 계속 반복한다.

4번 트랙「따라가면 좋겠네」는 터진 심장을 잠시 주워 담는 곡. 신윤철 3집 수록곡 「내게 왜냐고 묻는다면」의 리메이크다. 원곡의 핵심이 레게였다면 리메이크의 핵심은 잊을 수 없는 기타 리프다. 원곡의 영향으로 꽤나 가요 같지만(?) 베이스와 드럼이 묵직함을 유지해준 덕에 앨범의 흐름에 편승하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다. 「서울의 봄」은 다시 사이키델릭이다. 처음엔 슬렁슬렁 스트로크로 모던하게 시작하더니 기타의 영롱한 딜레이, 진득하니 쮸~~ 눌러주는 오르간, 그리고 무그와 바통 터치한 스틸 기타를 한데 엮으며 앨범 초장의 분위기를 회복한다. 김정욱으로 보컬이 바뀐 것은 흐름상 아주 적절하다. 이어지는 「나무랄 데 없는 나무」는 무그의 뚱뚱한 걸음걸이로 시작한다. 기타 리프는 역시 좋고 여러 번 짧게 터지는 블루지한 솔로도 끝내준다. 자, 여기까지, 「나무랄 데 없는 나무」까지는 정말 나무랄 데 없다. 10점 만점에 10점이다.

그럼 다음부터는 주춤한다는 얘긴가? 판단은 긴 러닝 타임을 자랑하는 8~9번을 어떻게 보느냐에 달렸다. 일단 기타보다 건반 플레이에 더 치중한 「중독」은 앨범 전반부와 후반부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하는 트랙이므로 슬쩍 넘어가기로 하자. 드럼도 건반을 닮아 기계적인 질감을 주고 수록곡 중에서 가장 현대적인 감각을 다룬 것 같은데, 어쨌든 넘어가자. 우선 3곡의 문제가 느려터진 템포는 아닌 것 같다. 전반부의 폭발력에 비해 심히 심심한 건 사실이지만 3곡 중에 맨 뒤에 위치한 「꿈속에서」를 들어보면 그건 이유가 될 수 없다. 사실 「꿈속에서」는 가장 잘 만들어진 사이키델릭이다. 전기 탐푸라(tampura)의 몽롱한 훅과 천장을 떠다니는 기타의 디스토션은 사이키를 위한 최상의 조합이다. 제목이 주는 이미지와 짧은 가사, 그리고 신석철의 여린 목소리까지. 9분이 9분 같지 않은 탄탄한 구성이다. 그럼 똑같이 느려터진 앞의 두 곡은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아무래도 「섬」과 「서로 다른」의 문제는 공교롭게도 신윤철의 기타 솔로인 것 같다. 기타 솔로가 신통치 않다는 게 아니라, 그것이 곡과 유리된 것처럼 느껴진다는 얘기다. 「섬」에서 기억에 남는 건 이상하게도 유치한 보컬 멜로디다. 우주 분위기를 내는 스틸 기타도 여기서는 지겨운 사운드로 전락한다. 「서로 다른」은 또 하나의 신윤철 3집 리메이크인데, 「따라가면 좋겠네」처럼 만들지 않아서 실패한 경우다. 느린 리듬이 원곡의 가요 같은 느낌을 지우지 못한다. 게다가, 어찌됐건 압권이라고 생각한 기타 솔로도 알고 보니 원곡의 솔로에서 중요한 줄기를 그대로 가져다 썼다.

자, 여기까지, 사이키델릭의 긴장을 녹이는 마무리 곡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까지 최종 점수는 10점 만점에 8점이다. 9점에 가까운 8점이다. 1집을 어렴풋이 떠올리며 ‘1집이랑 비슷하군. 조금 더 세졌을 뿐이야’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게 조금만 변했다고 하기엔 2집의 스타일과 완성도는 차원이 다르다. 물론 3집 리메이크 2곡과 신윤철의 목소리가 과거를 생각나게 하는 건 분명하다(그래, 그의 목소리는 원더버드의 『Cold Moon』같은 작품에 가장 잘 어울린다). 또 건반 운용이나 기파 이펙트의 몇몇 사례가 모던한 사운드의 접합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경기도 외곽 어딘가에서 2년 동안 합주하고 레코딩에 아날로그 8트랙 녹음기를 사용한 것은 서울전자음악단의 목표가 자신들만의 사이키델릭이었다는 걸 말해준다. 이건 분명 고강도 사이키델릭이다.

데뷔 22년 만에 음악 인생의 정점에 오른 신윤철

『Life Is Strange』가 유독 반가운 건 이들의 사이키델릭이 대략 40년 전의 모습, 그게 사이키델릭이라 불리든 하드록이라 불리든 상관없이 가슴을 뚫어주는 간절하고도 강렬한 피안의 신천지를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그때의 쾌락을 재현하고 있다는 건 아니다. 그때 그 느낌을 내가 어떻게 알고 있겠는가? 그러니까 이것은 일종의 도전적인 재구성인 셈이다. 40년 전 미국과 40년 전 한국의 사이키델릭이 두 나라의 중간 지점, 태평양 어디쯤에서 만난다고 가정하고 거기서 발생하는 혼합을 21세기의 상상력으로 스케치한 것이다.

단순한 스케치로 그치지 않고 짙게 색칠까지 할 수 있었던 까닭은 신윤철의 기나긴 이력이 충분한 답을 준다고 생각한다. 『Life Is Strange』는 지금까지 한국 사이키델릭의 명맥을 이야기할 때 거론됐던 인디 밴드들에게 상대적 관점을 제공한다. 네눈박이나무밑쑤시기의 주요 출처는 90년대 펑크의 해방감이었고, 머스탱스(Mustangs)의 주요 출처는 사이키델릭이라는 단어의 이데아였고, 그림자궁전의 주요 출처는 인디 특유의 발칙한 도발이었다는 걸 새삼 느낀다. 지금부터 한국 사이키델릭의 명맥은 서울전자음악단에게 넘겨주면 된다.

이번 앨범으로 신윤철이 데뷔 22년 만에 음악 인생의 정점에 올랐다는 걸 생각하니 기분이 묘하다. 사이키델릭, 22년, 이런 걸 다 제쳐두더라도 서울전자음악단 2집은 대단하다. 특히 앨범 전반부는 꼭꼭 들어보기 바란다. 근래 몇 년 동안 이토록 멋진 기타 리프를 무더기로 들려준 경우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