싼마오, 사막 사람들을 가슴에 품고 흐느낌을 달래주다!


스페인인 ‘호세’와 결혼한 ‘싼마오’는 ‘서사하라’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한다. 그곳은 생텍쥐페리가 어린왕자를 만났던 사하라 사막처럼 낭만적인 곳이 아니다. 서사하라는 아프리카 북서부 대서양 연안에 있는 나라로 오랫동안 스페인의 식민 통치를 받다가 1976년 '사하라 아랍 민주공화국'이라는 명칭으로 독립을 선언했다. 그러나 이웃 나라인 모로코와 모리타니가 서사하라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어 서사하라의 정세는 불안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원주민인 사하라위족과 스페인인 사이가 당연히 좋을 리가 없다.

그럼에도 싼마오는 그들과 친해지고 싶어한다. 광산으로 출근하는 남편 호세를 바래다주고 돌아오는 길, 더위가 작열하는 사막을 힘겹게 건너고 있는 사람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태워준다. 다른 사람들은 돼지라며 가까이하는 것조차 꺼리는 벙어리 노예에게 잠시 동안 더위를 피하게 해주고, 소박한 음식을 건네준다. 사하라에 살고 있는 사람을 담고 싶어 찍은 사진이 영혼을 빼앗는 기계로 오해받자 서슴없이 필름을 태양으로 태워버린다. 모로코의 진군으로 자신 또한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게 됐을 때도 쫓기는 자들을 도와주려 했다. 남편과 이웃들의 걱정에도 절대 지나치지 못하는 싼마오, 한마디로 그녀는 오지랖이 너무 넓은 사람이다. 다행인 것은 그 넓은 오지랖으로 그녀는 자신보다 약한 사람들을 안는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사하라에 머물고 싶다는 그녀의 바람과는 달리 모로코가 서사하라를 점령하게 되자 싼마오와 호세는 스페인령인 카나리아 제도로 옮기게 된다. 카나리아새의 원산지이자 아름다운 화산섬으로 유명한 이곳에서 싼마오는 여행의 즐거움을 맛보기도 한다. 그러나 그녀의 관심은 늘 사람에게 있었고, 어느 곳을 가든지 사람을 놓치지 않으려 했다.

여기서는 모래 한 알, 돌멩이 한 개도 귀하고 사랑스럽다. 날마다 해가 뜨고 지는 광경도 잊을 수가 없다. 그런데 어떻게 그 생생한 얼굴들을 기억 속에서 지워 버릴 수 있겠는가? (p.31)

사막에 처음 왔을 때 내가 품었던 가장 웅대한 포부 가운데 하나는 내 사진기에 이 극도로 황폐한 땅에서 살아가는 유목민들의 모습을 담는 것이었다. (p.57)

안타깝게도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남편 호세가 잠수 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싼마오는 유랑 생활을 마치고 고국 대만으로 돌아간다. 그곳에서 그녀는 학생을 가르치며 집필 활동을 계속했다. 여러 편의 책과 노랫말, 임청하와 장만옥 주연의 영화 <곤곤홍진>의 각본 등을 쓰며 활발한 활동을 하던 그녀는 1991년 48세의 나이로 자살했다. 너무나도 멋진 흑백 사진 속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도저히 자살할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자살로 알려져 있는 그녀의 죽음에 대해 아직까지도 많은 말들이 떠돌고 있다고 한다.

사막에서 생활하려면 낙타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것이다. 과거 농경생활에서의 소처럼, 혹은 유목생활에서의 말처럼 말이다. 낙타는 사막을 건너는 이동수단이 되기도 하고, 영양을 보충할 수 있는 고기를 제공하기도 한다. 낙타는 곧 사막 사람들이며, 낙타의 흐느낌은 바로 그들의 흐느낌인 것이다. 아직까지도 서사하라에서는 분쟁이 끊이질 않고 있다. 서구 열강의 식민 통치로 시작된 그들의 흐느낌을 하루 빨리 달래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하라 사막은 단지 그를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자신의 아름다움과 부드러움을 드러내고, 영원히 변치 않을 하늘과 대지로 그의 사랑에 묵묵히 대답한다. 그리고 그의 자손들도 모두 사하라의 품에서 태어나길 빌어준다. (p125)
 

오늘의 책을 리뷰한 ‘뒷북소녀’님은?
엉덩이로 책을 읽다보면, 엉덩이로 글을 쓰다보면 언젠가는 머리로 하는 것들을 앞지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열심히 하고 있어요. 그래서 닉네임도 뒷북소녀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