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사람이 쓰는 리뷰


나는 조길상과 아는 사이다. 내가 아는 거의 모든 뮤지션들은 내가 알기 전부터 이미 뮤지션이었는데 조길상은 내가 먼저 알고 나서 뮤지션이 되었다. 그러니 음악이 속속들이 다 보인다. 내가 능력 없기로 소문난 놈이긴 하지만 이 앨범에 관해서는 내가 여러분보다 훨씬 더 잘 들을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혹시 이 능력이 부럽다면 주변에 아는 놈들을 족치기 바란다. 맹세하건데 나는 조길상을 족친 적 없다. 걔가 스스로 걸어 들어간 길이다.

우리는 두 군데 회사를 같이 다녔다. 뭐 그냥 회사라고 해두자. 설명하기 복잡하니까. 당시 코스피는 사상 최고가를 경신 중이었고 다들 펀드다 뭐다 난리도 아니었는데 우리는 불투명한 먹고 사는 일 때문에 그런데 관심이 없었다. 우리의 회사들은 망하고 있는 중이었거나 공중분해의 수순을 밟고 있었다. 얼마 후 조길상은 내게 오랜 꿈이었던 뮤지션의 길로 나아가겠다고 말했다. 나는 그냥 웃었다. 서른에 무슨 뮤지션이냐고 코웃음도 쳤다. 다들 그런다고 그 자식도 웃었던 것 같다.

대놓고 웃었지만 마음속 변두리엔 가느다란 믿음이었다. 이 앨범 마지막 트랙에 실린 「괜찮아」를 처음 들었을 때를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 때도 회사에서 일 안하고 노가리를 까는 중이었다. 80년대 지어진 합정동 단독주택을 개조도 안하고 사무실로 쓰던 회사였는데 마당에는 풀이 허리까지 웃자랐고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김기영의 <하녀>에서처럼 음기가 가득했다. 그 축축한 곳에서 들려온 노래였다.

난 키가 작아도 괜찮아 왜냐하면 얼굴이 잘 생겼으니까
난 못생겨도 괜찮아 왜냐하면 집에 돈이 많으니까
난 돈이 없어도 괜찮아 왜냐하면 능력이 출중하니까
난 능력 없어도 괜찮아 왜냐하면 섹시하니까.

느린 템포로 시작하는 「괜찮아」의 첫 부분이다. 진실한 고백이면서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이다. 조길상은 키가 작긴 하지만 전혀 섹시하지는 않으니까. 음기 가득한 사무실에서 가만가만 부르는 그의 목소리를 따라가면서 피식 웃음이 났고 웃음 뒤에서 뭉클한 게 만져졌다. 자기 이야기를 꺼내 놓음과 동시에 보편적인 위로를 들려주는 곡이었다. 그래서 후렴구로 넘어가는 기타 스트로크에서 나도 모르게 깊이 동화되었다. 다 듣고 나서 한 번 더 불러달라고 했었던 것 같다. 그리고는 코드를 가르쳐달라고 해서 조길상 앞에서 내가 직접 부르기도 했다. 나는 아직도 이 곡이 불후의 명곡이라고 생각한다. 아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 조길상의 연신내 친구들 사이에서나 회자되던 곡이었지만, 누구나 다 아는 노래보다 몇몇 사람들이 아끼는 노래가 더 소중할 때가 있다. 트렌드나 무브먼트는 그런 데서 시작되는 것 아니던가?

그 후로 오랜 시간이 지나는 동안 조길상은 클럽 타(打)를 근거지 삼아 많은 공연을 치렀고, 또 오랜 시간이 흘러 이렇게 앨범을 내는 진짜 뮤지션이 되었다. 친구로서야 뭐 감개무량하다. 수많은 충고들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 조길상에게 존경의 박수를 보낸다. 트렌드를 주도하거나 대중음악사를 아로새길만한 역사적인 명반이 아니라서 좀 유감이지만 그래도 괜찮은 노래들이 담겼다. 몇 년간 만든 노래들 중에 다섯 곡을 추린 첫 EP는 어쿠스틱이 주가 된 팝 앨범이다. 앨범 전반에 참여한 전영호(더 캔버스)의 키보드는 이 앨범을 팝적인 코드로 읽어내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깔끔한 소리들로 여백을 채우면서 치기 어린 신인의 거친 데뷔 앨범으로 전락하는 오류를 봉쇄한다. 「괜찮아」 역시 와이낫의 김대우와 손말리가 참여하면서 거친 통기타 스트로크만 있던 초창기 버전보다 훨씬 세련되어졌다. 팝적인 센스가 가장 돋보이는 곡은 「선물같은 시간」이다. 모난 데 없이 매끄러운 해변가 자갈 같은 곡이다.

하지만 아는 사람인 나는 어쩔 수 없이 아쉬움이 남는다. 우선 역사적인 명반이 아니라서 그렇고 조길상의 매력이 충분히 보이지 않아 그렇다. 그의 목소리는 김광석을 닮았다. 이런 비교를 조길상은 정말 싫어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의 목소리를 들으면 어디서 맞고 들어온 동생을 떠올린다. 그런 게 아니라고, 그냥 대문 앞에서 넘어진 거라고 잡아떼지만 입술이 터지고 멍이 든 얼굴을 보며 김약국집 아들을 찾아가 흠씬 두들겨 패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조길상의 맑은 목소리 뒤에는 왠지 울음 같은 게 섞여 있다. 글쎄 모르겠다. 내가 아는 사람이라 그렇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여러분은 어떻게 들리는가? 적어도 「문득」에서 “언젠간 그대 세상 속에 내 곁에 있지 않을 그 날이 오겠지”라고 부르는 부분에서 그런 게 느껴지지 않나? 나는 조길상의 그런 묘한 신파가 좋다. 목소리가 품고 있는 신파, 그건 일종의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그의 길을 지지한 건 「괜찮아」의 유쾌한 역설 때문이기도 했지만 목소리 뒤에 숨어 있는 창백한 그림자 때문이기도 했다. 김광석도 그런 걸 가졌다. 힘찬 목소리로 “잊혀진다면 잊혀지면 좋겠어”라고 부르지만 우리는 다 느끼지 않나? 정말 잊을 수 없는 운명을.

아무래도 조길상은 김광석류의 감성을 구식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자기 목소리에 내재한 신파 역시 벗어나야 할 무엇으로 여긴 것 같다. 그래서 세련된 편곡에 기타 연주도 신경 쓰고 온 세계에 평화 행복 자유가 만연하자고(「왜 웃지?」) 성급히 말해 버리는 거다. 팝과 포크의 간극, 그러니까 공감과 고백 사이의 틈이 느껴진다. 그래서 「왜 웃지」의 역설은 역설이 아니라 더 할 이야기가 남았는데 멈춘 듯이 들린다. 이게 일종의 계륵이 아니었나 싶다. 다섯 곡의 EP에 뮤지션의 고백을 다 담을 수 없다면 듣기 좋은 소리를 선택할 수밖에 없겠다는. 결과적으로 이 앨범엔 포키로서 조길상의 울음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나는 이 앨범에서 「문득」이 참 좋다. 그의 연애와 결혼을 지켜본 사람으로서 이 곡이 얼마나 진실된 마음으로 쓰였는지 알기 때문이다. 그와 모르는 사람이라도 그런 건 느껴지리라 생각한다. 이렇게 조길상이 마음속의 울음을 좀 더 울었으면 좋겠다. 삶은 역설투성이고 “살아간다는 건 때로 내 진심을 외면하는 일”(「문득」)이라고도 썼지만, 노래한다는 건 삶에서 외면했던 진실이 유일하게 담기는 일이라는 걸 너도 알지 않느냐고 묻고 싶다. 이런 질문은 얼굴 보면서는 정말 못하겠더라.

 

오늘의 음반을 리뷰한 '전자인형'님은?
초등학교 3학년 어느 맑은 날 컬처클럽 뮤직비디오를 보고 2차 성장을 감지한 구 메탈키드. 대마초 한 대 펴 보는 게 소원인 말보로 라이트 헤비 스모커. 웹진 음악취향Y(http://cafe.naver.com/musicy)에서 전자인형이란 필명으로 평균 조회수 50의 잡다한 글을 쓰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