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랭크 시나트라의 「My way」에는 삶의 종착역에 도착한 인간의 고백이 나온다. “사랑을 하고, 웃고, 울기도 했네”라고 고백하는 걸 보면 그 삶도 그리 특별해 보이진 않는다. 하지만 어떤 장애물이 있어도 길을 벗어나지 않았기에 그는 “I did it my way”라고 말할 수 있다. 마지막 순간, 이처럼 자신의 삶을 긍정할 수 있는 이가 얼마나 될까. 근데 자신이 성공하고 말았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아뿔사’란 표현을 써가며, 의도치 않았는데 성공이 따라왔다는 건방진 뉘앙스까지 풍긴다. 눈에 레이저빔 하나 심고 <아뿔사, 난 성공하고 말았다>를 들여다보자.
이 책은 성공회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서 개설한 ‘매스컴특강’에 강사로 초빙된 10명의 이야기다. ‘딴지일보’ 총수 김어준, 밴드 언니네이발관의 리더 이석원, ‘MBC 9시 뉴스데스크’ 앵커였던 신경민 아나운서, <시사IN> 기자 고재열 등이 얼굴을 내민다. 돈을 많이 벌어 큰 기업을 이끄는 CEO나 한 번 출동하면 세상이 들썩이는 명망가는 없다. ‘음, 대체 이 사람들이 말하는 성공의 기준이 뭐야?’란 의문이 들 때쯤, 김어준 총수는 ‘짜식, 내가 너 그럴 줄 알았어’라는 듯 자신들의 성공 기준을 말한다.
자신감과 자존감을 헛갈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감은 내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 자신감은 특정 능력이 타인과 비교해서 우월할 때 나타납니다. (…) 그러나 ‘자존감’은 ‘내가 나를 승인’하는 거예요. 예를 들어, 길을 가다가 잘생긴 사람 봤을 때, 자존감을 가진 사람은 ‘잘생겨서 좋겠다, 자식아’ 이렇게 되는 거죠. (…) 하지만 가격표를 스스로 붙이는 일이 쉽지는 않아요. 앞에서의 사이클로 훈련된 사람이라면 자기만의 가격표를 가질 수 있어요. 그리고 자기 가격표대로 사는 겁니다. 그리고 훌륭한 사람이 되는 거죠. 하하. (28~30쪽)
아뿔사, 이들은 스스로 매긴 가격표대로 성공을 한 거구나! 잘하던 앵커 자리에서 ‘쫓겨’나더라도 언론인으로서 하고 싶은 말을 하고, 매스컴에서 주구장창 띄어주지 않더라도 하고 싶은 음악을 하며, 독자들이 뛰쳐나온 광장에서 함께 호흡하는 것에 더 큰 가치를 두는 이들에게 성공은 멀리 있지 않다. 하긴 이정도의 자존감이 있었기에 김어준 총수는 야후 관계자에게 “일, 귀하를 ‘딴지일보’ 홍보대사로 임명한다. 임명과 동시에 귀하의 모든 권리는 본지가 접수한다. 임명 거부는 불가하다”는 임명장을 수여할 수 있지 않았겠나.(8쪽)
자존감 하나로 험한 세상을 헤쳐 나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노력하지 않았다면 세상이 손가락질 할 때 흔들리고, 자신의 길에서 벗어나기가 쉬웠을 거다. 이들은 쉬지 않고 노력한다. 고재열 기자는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길을 뚫기 위해 갖은 협박과 소송을 불사해야 하고, 신경민 아나운서는 수초에 불과한 한마디를 던지기 위해 모든 신문과 뉴스를 모니터하고, 고 기자와 마찬가지로 백만 안티와 협박에 맞서 싸웠다. 그리고 “너무 힘들어서 친구한테 ‘너무 힘들어서 죽을 거 같다. 미치겠다’고 말하던 이석원은,
읽지는 못하지만 책을 사기 시작했고, 달리기를 시작했어요. 땡볕이라 밖에서는 못 하고 아파트 지하 주차장, 그 공기 안 좋은 곳에서 하루에 3시간, 4시간씩 달렸어요. 고통을 잊기 위해서. 그러다가 집에 올라와서 가사를 썼습니다. (58~59쪽)
니 가격은 내가 올려줄게!
눈에 장착된 레이저빔이 어느덧 꺼진다. 물론 누군가 지배하고 있는 세상이 너무 견고하여 이런 ‘성공자’들이 있어도 세상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나은 삶을 꿈꿀 수 있는 것은 이들 모두 ‘함께하는 삶’을 꿈꾸기 때문이다. 미술평론가 반이정은 기존의 주례사 비평을 넘어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미술현장을 만들기 위해 글을 쓰고,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성남훈은 자신이 세계를 돌며 목격한 이면의 것들을 공유하기 위해 사진을 찍는다. 언론, 음악 등이야 태생이 그러니, 두 말하면 입 아프다. 하여튼 이런 사람, 노력이 쌓이면 험한 세상에 다리 하나쯤은 만들어지겠다.
아뿔사, 성공하고 만 이들이 이야기를 하면서 잊지 않는 게 있다. KBS 고민정 아나운서는 ‘아나운서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왜 아나운서가 되고 싶은’지 묻는다. 정작 중요한 것은 아나운서가 되기까지가 아니라, 그 이후다. 단지 보기 좋아 아나운서가 되는 것은 다른 직업을 선택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바쁜 스케줄 속에서 자신을 잊기가 오히려 쉽다. <황해문화>의 전성원 편집장은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을 말한다. “처해 있는 곳이 어디든 그곳에서 주인이 된다면 서는 곳마다 진리의 땅이 되리라”는 뜻이다.(128쪽) 이는 “주인으로서 세상의 이름들을 다시 재해석하고 다시 이름을 붙여주는” 것이 ‘위대한 일’이라 말하는 광고인 이용찬도 마찬가지다.
아후, 할 게 너무나 많다. 시간이 걸리고, 훈련도 필요하다는 자존감을 쌓고, 세상의 찬바람과 맞설 수 있는 용기와 맷집도 필요하다. 또 사람들과 함께하는 삶을 살아야하며, ‘나’ 서 있는 곳에서 주인도 돼야 한다. 뭐, 이들 보고 배가 아파서라도 한 번 해봐야겠다. 고민정 아나운서 말마따나 우린 젊지 않은가! 실컷 울고 웃어본 후에 「My way」를 부를 테다. 끝으로 새 학기를 맞는 대학생들에게 보석 같은 말을 발견해 소개한다. 출판평론가이자 번역가 겸 작가 표정훈 선생의 말이다.
제가 대학교 다닐 때 한 이상한 짓 중 하나가 학교에 있던 각종 학과의 이런 저런 개론, 통론을 거의 다 들었습니다. (…) 그거를 한 학기 듣고 나면 대충 감은 잡힙니다. (…) 근데 이렇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 대학 때입니다. 시장에 내몰리면 이거 할 시간이 없어요. 시장에 내몰리면 자기 분야에서도 성과를 내야 하니 다른 분야로 곁눈질할 시간이 없죠. 여러분들이 부러운 게, 곁눈질할 자유를 4년 동안 누리고 있는 거. 곁눈질하다가 조금 잘못돼도 용서받을 수 있고. 오히려 사회가 공인하는 스펙을 쌓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런 쪽으로 계발하는 게 나중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됩니다. 요즘 등록금 비싸죠? 그 비싼 등록금을 허비하지 마시고 강의시간에 다 배우세요. (287~289쪽)
-컨텐츠팀 에디터 안늘(ak20@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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