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헤비메탈의 전설이 된 밴드, 백두산. 그들이 1986년 첫 앨범 『Too Fast! Too Loud! Too Heavy!』를 발표하던 시절의 멤버로 재결성 되었다는 소식은 묘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하나는 왕년의 노장들이 오랜 공백 후 컴백할 때 늘 가지게 되는 우려와 기대라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2009년의 한국이 22년 전 백두산이 한참 활동하던 시기의 한국사회와 자연스레 오버랩 되었기 때문이다. 1987년 전두환 정권이 한강 바닥까지 콘크리트로 덮어버린(덕분에 한강은 자연하천의 능력을 거의 잃었고 때가 되면 강바닥의 모래를 퍼 올려야 하천 기능이 유지 된다) 환경 파괴적 공사의 마감을 기념하는 관제 콘서트에 동원되었던, 그러나 그 자리에서 마치 누구 보란 듯 파격적이고 일탈적인 무대매너를 보였던 백두산을 TV로 지켜보며 ‘멋있다’고 동경하던 어린 나였기에 감회는 남다를 밖에.
발매 이전부터 이미 확인할 수 있던 제목이지만 막상「우리가 대한민국이다」의 곡명을 앨범에서 확인하는 순간, 정말 표현하기 힘든 감정에 사로잡혔다. 20년 전 독재와 억압의 아이콘, 「아! 대한민국」의 기억마저 스쳐가면서 가사를 확인하기가 잠시 망설여졌다. 그러나 나의 십대를 사로잡았던 백두산 아닌가. 그 시절 내가 단 한 번이라도 가사를 생각하고 음악을 들었던가? 나에겐 김도균의 얼터네이트 피킹으로 만드는 묵직한 리프와 무시무시한 샤우팅의 유현상의 존재가 모든 것을 다 잊게 하지 않았던가. 어느새 대가리가 굵어지고 생각이 많아진 아저씨의 머리와 달리 손은 가사집을 그냥 디지팩에 꽂아둔 채, CD만 플레이어에 집어넣고 있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생겼냐고? 헤비메탈이라는 음악의 “똘끼”가 정말 무서운 것임을 다시금 떠올리게 만든 경험이 펼쳐졌다.
이건 50대 중반의 아저씨의 목소리가 아니었고, 베이스 연주가 아니다. 말 그대로 젊은 헤비메탈 사운드다. 공식적인 백두산의 마지막 앨범이었던 1992년의 『Baekdoosan III』의 호방하고 정통 하드록의 기운이 넘실대는 연주와는 차원이 다르다. 점도 높은 둥근 톤을 자랑하던 김도균의 기타는 단단하고 날카로운 톤으로 무장하고 단순한 리프의 끊임없이 반복으로 밀어붙인다. 여기에 달려드는 김창식의 베이스는 리듬기타 수준의 공격적인 연주로 힘을 더한다. 최근 메탈코어계열 밴드를 연상시킬 만큼 단단한 터치의 피킹으로 울려대는 베이스는 오버드라이브마저 묵직하게 걸려있다.
이건태의 드럼 역시 (이제는 디스코그래피에서 정규앨범의 위치를 잃은) 파워백두산(Power Baekdoosan)에서 선보인 연주 못지않게 공격적이다. 다만 파워백두산 시절의 투베이스 난타와 달리 심벌과 하이햇의 날카로움을 전면에 내세우며 역동적인 리듬 메이킹에 중점을 두고 있다. 라이브에서 이를 재연하는 한춘근의 연주는 정확한 리듬 키핑을 선보인 이건태에 비해 카우벨을 삽입하기도 하는 등 좀 더 리듬을 밀고 당기는 재미를 선사하는 모양새다. 염려했던 유현상의 보컬은 과거보다 오히려 더 날카로운 샤우팅을 곳곳에 박아 넣으며 격렬한 헤비메탈을 완성한다.
김도균 정도 되는 초특급 기타리스트라면 화려한 지존의 솔로를 마구 흩뿌릴 것이 예상되지만 리프 메이킹 사이로 반드시 필요한 지점에서만 치고 빠지는 스타일을 고수한다. 그의 화려한 솔로를 맘껏 들을 수 없다는 것이 아쉽기도 하지만, 그만큼 밴드가 노장들이 빠지기 쉬운 어깨에 힘들어간 티를 내지 않겠다는 다부진 각오로 이해된다. 앨범에서 가장 귀를 파고드는「반말마」는 리프인가 루프인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단순하고 빡빡한 곡이다. 이 곡에선 아예 기타 솔로조차 없다. “반말마”를 수없이 반복하는 정말 단순한 가사와 이에 화답하는 단순한 리프의 쉼 없는 반복은 평균 연령이 50을 훌쩍 넘은 밴드의 연주라 상상하기 힘들다. “나도 반말 할 줄 알아”로 시작되는 브릿지에서 하이플랫으로 도약하는 베이스 라인에서나 정통 하드록/헤비메탈 고수의 숨결이 느껴진다고 할까.
22년의 간극, 함께 소리치고픈 간절함
2집에 실렸던 「Up In The Sky」와 「주연배우」는 여러 면에서 22년의 간극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해준다. 재수록된 두 곡의 리프는 앨범의 새로운 곡들과 확연히 차이가 난다. 당대엔 잉베이 맘스틴(Yngwie Malmsteen)과 비교되기도 했던, 하지만 김도균의 전매특허라 할 특유의 그루브감이 살아있는 리프가 새 노래들에선 단단한 구성의 직선적 리프로 대체되었다. 앨범에서 가장 공격적인「아이들아」의 리프는 얼터네이트 피킹으로 만들어낸 질주하는 느낌이 가장 잘 표현되었지만 김도균식 리프라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는다. 대부분의 곡에서 들을 수 있는 풀 다운피킹 기타 리프과 드럼 필인으로 구성된 연주 스타일은 백두산 이후 세대의 음악에서나 들어봄직한 것이다.
새 노래들은 작곡자 유현상이 의도했건 아니건 과거와 분명히 달라진 모습이다. 재밌는 것은 기타와 베이스가 질주하는 대신 유현상의 스타카토로 강조되는 보컬이 상당한 그루브를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반말마」와 「살 만한 세상」에서도 비슷한 구조가 곳곳에서 발견된다. 심벌웍에 맞춰진 보컬의 리듬감과 대고에 맞춰진 베이스와 기타 리프의 조합은 따져 들어봄직하다. 유현상의 보컬은 진성에서는 나이가 느껴지는 중저음이 강해졌다. 허스키하면서도 과거보다 묵직해진 진성은 분명 22년 세월의 결과다. 그러나 무시무시한 샤우트는 세월을 지워버렸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유현상의 보컬은 고음의 찌를 듯한 날카로움에 비해 힘으로 누르는 중음대가 다소 약한 스타일이다.
과거 「And I Can`t Forget」에서 강력한 중음역대를 자랑하는 김성헌의 코러스가 빛을 발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사실 이는 어느 정도 허스키 보이스의 보컬리스트들에게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점이기도 하다. 「In My Life」를 들어보면 중저음이 과거보다 더 거칠어지면서 파워를 획득했지만 대신 무거워지면서 고음과 더 대조적으로 들림을 확인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자연스럽게 중음에서 고음으로 이어지는 스타일을 선호하는 편이기에 이 지점이 다소 아쉽다. 물론 이는 보컬리스트 유현상의 개성이기도 하고, 여전히 이런 고음을 들려줄 수 있을 만큼 자기 관리가 철저했다는 것을 반증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그의 보컬은 어떤 면으로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22년만의 컴백에서 백두산은 무대에서 관객과 함께 소리치고 싶었던 것 같다. 발라드 1곡을 제외한 4곡의 신곡은 모두 한 번만 들어도 싱얼롱이 가능한 단순한 보컬 라인이 반복되는 스타일이다. 거기에 유치하리만치 단순하고 쏙쏙 들어오는 가사까지 더해지니 결과적으로 싱얼롱 측면에서 나름 성공적이다. 밴드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렇다 쳐도 보너스 트랙 격으로 실린 오리지널 버전「살 만한 세상」의 후반부에 들을 수 있는 물 흐르듯 6현부터 훑어 올라가는 기타 솔로를 만나는 순간, 앞서의 8곡보다 이게 백두산이란 생각이 퍼뜩 든다. 1년 가까이 리허설을 하며 준비했다고 하지만 아직 멤버들의 몸이 100%가 못 미치는 게 아닐까 싶다. 밴드는 단순히 개개인의 능력의 합이 아니다. 김창식의 나이를 잊은 열혈 메탈 베이스와 김도균의 말이 필요 없는 마스터 기타와 유현상의 절창, 그리고 한춘근(녹음은 이건태지만)의 파워풀한 드럼이 모였지만, 그 열악한 시절『King of Rock`n Roll』을 뽑아내던 백두산의 합이라 하기에 부족하다.
단지 5곡이라는 새 노래의 숫자 때문이 아니다. 너무나 잘 계산된 빡빡한 연주는 젊은 감각일는지 몰라도 오랜 팬이 기대한 백두산의 모습은 아니기 때문이다. 유기적인 구성미를 자랑하는, 밴드 멤버의 몸이 만들 수 있는 백두산의 연주를 기대하기에 22년의 공백이 어쩌면 너무 길었는지 모른다. 22년만의 외출에 가슴이 부풀었고, 이 기분과 때를 놓치면 또 언제를 기약할지 모른다는 두려움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앨범은 레코드(record), 즉 기록이다. 그런 점에서 조금 성급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22년의 시간이 쌓여 만든 진솔함은 언제나 감동을 주는 법. 완전히 만개한 밴드의 합이 아니라도 “다신 안 쓰러져, 다신 울지 않아, 웃었지, 얼마 전이야”라고 이야기하는 슬로우 록「In My Life」가 귓가에 남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어둠 속에서」 「And I Can`t Forget」을 이어 유현상의 곡쓰기가 레인보우(Rainbow)와 딥 퍼플(Deep Purple)의 영향권에 있음을 감지할 수 있는 이 노래의 백미는 김도균의 색다른 스케일의 솔로와 어우러지는 유현상의 담담한 독백에 있다. 방황하던 날들에 대한 회한과 록커로 다시 시작하는 다짐, 진심, 감동 등이 그대로 청자에게 밀려온다.
노장의 “똘끼”, 전설의 복귀
사실 나는 그들이 “그럭저럭 버티는 태도는 분리수거 해서 던져버리”면서 까지 세워놓은 목표가 “대한민국”과 “내 나라”라는 것에 그다지 공감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그들의 언사에 거짓이 있다고 생각지도 않는다. 인간의 사고는 그가 살아온 시대의 집약적 산물이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시대와 사회에 대한 분노로 가득한 가사라면 더더욱 그가 살아온 시공간의 흔적을 지울 수 없다. 과거 백두산은 자신들의 가치가 집약된 앨범에 뜬금없는 합창으로 ‘건전가요’「시장에 가면」이 실리는 것이 싫어 그 자리에「우리의 것」이란 곡을 만들어 집어넣었다. 1987년 보았던 「우리의 것」은 아티스트의 자존심과 반골정신이었지만, 큰 틀에서 보면 독재 시대의 서글픈 산물이지 않은가.
2007년 12월 이후로 나는 세대와 세대, 생각과 생각 사이에서 역동성보다 단절과 벽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 단절을 특별히 긍정하지도 부정하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 살기로 했다. 그러나 백두산의 『Return of the King!』은 나에게 너무도 흥미롭고 재밌는 경험이다. 지난 해 한미 쇠고기 협상에 반대하는 촛불집회와 노무현 대통령 서거 자리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이 자아낸 감동과 큰 틀에서 다르지 않을 것이다. 각 세대의 사고방식은 분명 다르다. 그러나 그 다른 주체들도 같은 자리에 돗자리 펴고 함께 만날 수 있는 무언가의 가능성은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 무엇이 어떤 것을 해결해주지도 갈등을 봉합시켜주지도 않는다.
그러나 최소한 다름을 한 자리서 확인하고 서로 얼마나 다른지 아는 게 중요한 것 아닐까? 억지로 모두 같아야 한다며 형틀에 주물 붓듯 옭매던 독재정권과 그 때를 아름다운 시절이라 회상하는 정권 아래 살아가는 지금, 음악을 즐기는 포인트와 감정이 세대마다 다름을 확인할 수 있는 백두산의 음악을 만나는 경험은 짜릿하다. 백두산의 음악을 앞에 두고 나와 20대가, 10대(또 40대)가 서로의 다름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그 확인은 절망이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는(동조하는 것이 아닌) 만남의 첫 움직임이 될 수 있다. 다른 생각, 경험을 가진 사람이 서로 같지 않음을, 상대방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만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다름을 소통할 수 있기 위해 그렇게 젊은 헤비메탈을 하려고 몸부림치는 노장의 “똘끼”는 그래서 고맙다. 전설의 복귀를 환영한다.
백두산 팬 카페: http://www.e-baekdoosan.com
오늘의 음반을 리뷰한 '헤비죠'님은? 조일동이란 본명이나 헤비죠(heavyjoe)란 필명 모두에서 왠지 무게감이 느껴지는 음악 글쟁이이자 문화인류학 꾼. 아웃사이드의 여러 웹진과 잡지, 단행본에 록, 블루스, 재즈, 메탈, 펑크, 힙합 등 음악에서 현실정치까지 오지랖 넓게 글을 써왔음. 현재는 웹진 음악취향Y(cafe.naver.com/musicy)에서 주로 활동 중이며, 대학에서 문화, 영상, 인류학, 대중미학, 일상음악 등에 대해 강의를 하고 있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