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살살 쓰다듬기



아이가 있는 집이라면 이런 일 한번쯤은 꼭 있습니다. 상황은 이렇습니다. 아이가 사고(?)를 칩니다. 아이가 뭘 몰라 그러는구나 하는 마음에 뭐가 잘못됐는지 설명해 줍니다. 그리고는 알겠지? 다음에 그러면 안 된다,라고 당부합니다. 그때 순한 양처럼 얘기를 듣던 아이가 눈동자를 또로로 굴리며 대답합니다. “왜?” 새해를 맞아 비단결 마음씨를 갖겠다고 한 굳은 다짐이 생각납니다. 그건 말이야, 라고 한 번 더 설명을 합니다. 하지만 다시 돌아오는 대답은, “왜?” 속이 부글부글 끓습니다. 그런데 아이의 말이 말대답이 아니라 괴물에게 하는 거라면 어떨까요.

민수는 피아노 학원 가기가 참 싫습니다. 그래서 피아노 가방아 나타나지 마라,는 심정으로 가방이 없을만한 곳을 기웃거립니다. 그런데 손자 사랑이 지극한 할머니께서 나타나 가방은 네 방에 두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제 아니 갈 수 없습니다. 피아노 가방을 든 발걸음이 어찌나 무거운지 민수의 어깨는 축 처져있습니다. 피아노 학원은 가까운 곳이지만 빨리 도착하기 싫어 고수부지 산책로를 따라 빙 돌아갑니다. 날씨는 왜 이리 좋은지요. 괜히 심술이 난 민수는 눈앞의 돌을 뻥 찹니다. 바보짓이었습니다. 발이 너무 아파 쓰러지고 맙니다.

얼마 후 민수 곁에 강아지 두 마리가 나타납니다. 그런데 민수가 알던 강아지와는 조금 다릅니다. 황금빛 털에 황금색 뿔이 주둥이 위로 삐죽 솟았습니다. 두 눈은 위쪽으로 모여 하늘을 바라보며 빙글빙글 돕니다. 민수는 처음엔 무서웠지만 그 모습이 귀여워 말을 걸어봅니다. 그런데 강아지들이 ‘멍멍’ 짖지 않고, ‘왜? 네!’라고 짖습니다. 민수는 강아지들에게 왜? 네!라고 이름을 지어줍니다. 어른들 눈에는 왜? 네!가 보이지 않나봅니다. 앗싸! 신이 난 민수는 왜? 네!를 데리고 집에 돌아옵니다.

피아노 학원을 가지 않았기에 집에 들어가기가 겁이 납니다. 아니나 다를까 엄마는 헐크로 변해있었습니다. 화가 난 엄마는 민수를 부릅니다. 아뿔싸! 때마침 왜?가 아빠가 산 달항아리를 향해 가더니 기어코 깨뜨릴 것 같습니다. 그래서 소리칩니다. “왜?” 주방에서 엄마가 씩씩대는 소리가 들립니다. 큰일 났습니다. 엄마한테 한 말이 아닌데 헐크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 가을 산으로 변했습니다. 이를 어쩌면 좋을까요. 귀엽기만 했던 녀석들이 온 집안을 뛰어다니며 난장을 부리고, 엄마의 분노 게이지는 높아집니다. 으앙, 민수는 정말 억울합니다.
 

왜? 네!를 만나신 적이 있나요?(그림 송희진)


<괴물 길들이기>는 아이와 어른들의 생각 차이에서 비롯된 해프닝을 그린 창작동화입니다. (어른의 눈으로 볼 때) 아이들이 말을 듣지 않는 게 아니라, 괴물로부터 집안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그런 것이란 상상이 무척 재밌습니다.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 말뜻이 이해되지 않으면서도 가족의 평안을 위해 ‘네, 알겠습니다’라고 답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곁에 왜? 네!가 있었다면 저도 민수처럼 볼기짝을 흠씬 두들겨 맞았겠죠? 작품은 아이가 괴물을 길들이기 위해서는 어른도 시선을 낮출 필요가 있다는 귀여운 교훈을 줍니다.

작품에서 감초 역할을 하는 건 휴가를 나온 군인 삼촌입니다. 삼촌은 어릴 적 왜? 네! 괴물을 만난 적 있어 민수와 말이 잘 통합니다. 그런데 삼촌은 왜? 네!를 갖다 버리기보다는 잘 길들이는 게 더 좋다고 말합니다. 사람이 꿈을 꾸게 만드는 흰쥐가 들락거리는 코가 막혔을 때 왜? 네!가 황금빛 뿔로 그 구멍을 뚫어주기 때문입니다. 참 멋진 삼촌입니다. 사방이 꽉 막힌 세상을 바꾸는 원동력이 ‘왜?’란 호기심(혹은 저항정신)이며, 희망을 잃고 쓰러져 있을 때 다시 서게 만드는 것이 ‘네!’란 자신감이라는 걸 가르쳐주고 있으니까요.

민수는 왜? 네!를 갖다 버리기보다 길들이기를 선택합니다. 어린 민수가 왜? 네!를 길들이는 데에는 시간이 많이 걸릴지도 모릅니다. 또 깜찍한 괴물들이 언제 끔직한 괴물로 변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건 어른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버리는 건 쉽습니다. 이제 그만 후회해야지,해도 후회는 찾아옵니다. 또 끝난 사랑은 잊어야지,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마음은 버리는 게 아니라 길들이는 것인가 봅니다. 2010년, 무얼 길들일 예정인가요? 그게 무엇이든 민수, 왜? 네!와 함께 응원하겠습니다.

                                                                                       -컨텐츠팀 에디터 안늘(ak20@bandinlun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