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면, 인생에서 만나게 되는 인연들, 일어난 사건들은 평범한 어떤 날 우연히, 그 우연의 순간이 겹치고 충돌하면서 시작되고 일어났던 것 같습니다.
제 인생의 절반 이상의 시간을 함께하고 있는 친구 B는 고등학교 입학 직후, 오후 청소시간에 청소를 땡땡이치고 하절기 교복을 구경하러 갔다가 만난 것을 시작으로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고, 20대 격변의 시간들을 고스란히 함께했던 친구 J는 전날 소개팅 했던 사람을 보여 주겠다던 K와 복잡한 종로통 편의점 앞에서 만나 지금까지 서로의 모든 굴곡들을 함께 건너고 있습니다. 또 다른 친구는 영화제에 갔다가 갑자기 들이닥친 전경들 때문에 영화제가 취소되면서 그걸 항의하러간 친구들의 가방을 지키다가 만나서 서로의 모든 마디들을 확인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여기에도, 다른 보통의 날과 다를 것 없던 날, 우연한 사건, 평소와 다를 것 없던 행동으로 이어지고 만난 친구들이 있습니다.
10살 때, 부모님의 자랑과 기쁨 그리고 자신의 우상이었던 형의 자살을 목격한 뒤, 정신병원을 전전하며 노인처럼 살아가던 18살 레오의 유일한 소망은 법원의 보호관찰이 끝나는 것입니다. 그 보호관찰 기간이 끝나가던 어느 날, (조금 특별한 것이 있었다면, <율리시스>에서 모든 일들이 일어나는 날인 ‘불룸스 데이’라는 것 정도) 학교 교장인 어머니의 심부름을 하다가 친구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은, 저와 제 20년 지기처럼, 오랜 시간 함께하면서 노인의 삶으로 침잠된, 어둡고 긴 터널을 빠져나옵니다. 또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삶을 이룩하면서 그들은 서로의 친구에서 가족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만약, 소설이 레오를 중심으로 레오와 친구들과의 이런저런 성장과정‘만’ 이야기 한다면 보통의 성장 소설로 끝났을 텐데……. 그들의 이야기는 지금부터 다시 시작됩니다.
그들은 시간이 흘러 시바의 오빠인 트레버를 구해 다시 찰스턴에 모여 처음 만났던, 레오의 보호관찰이 끝난 것을 기념하는 파티를 했던 18살 때로 돌아간 것처럼 유쾌한 파티를 열지만, 조금씩 변해있는 서로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 변화는 커다란 허리케인이 찰스턴으로 다가오면서, 시바의 아버지가 무서운 정신병자로 시바와 트레버는 물론이고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병적으로 집착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모두를 공포에 떨게 합니다. 그러다 미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배우이자 그들의 가장 사랑스러운 친구 시바가 그녀의 아버지로부터 처참하게 난도질당한 채 살해당하면서 이야기는 마무리 지어지는 듯합니다. 하지만, 그런 사건들 속에서 그들은 과거(의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한 아픔이 터져 나오기도 하고 현실의 삶에서 조금씩 이방인으로 밀릴 수밖에 없었던 외로움이 드러나면서 (개인의) 상처가 드러나고 (상대방의) 상처를 발견하게 됩니다.
상처는 레오를 중심으로 터져 나옵니다. 자신의 부탁으로 눈 수술을 받게 된, 산골에서 온 고아, 스텔라와 결혼했지만 그녀는 어린 시절에 받은 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결혼 뒤에도 가출과 발작 속에서 살다가 결국 자살을 하게 됩니다. 레오는 경제적으로 얻은 안정감과 상관없이 안락한 가족을 이루지 못했다는 결핍 속에 살다가 아내의 자살 소식에 죄책감에 시달립니다. 또 동시에 어린 시절 형의 자살이 레오의 부모는 물론이고 자신의 멘토였던 신부 때문이었다는 사실(소아 성애자였던 신부가 형을 성추행해 형이 자살했던 것)을 알게 되면서 그는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그와 그의 친구들이 ‘불룸스 데이’의 우연한 만남으로 레오를 구원하기도 했지만, 또 다른 우연한 만남은 자신의 의지나 노력 등과는 상관없이 그를 절망하게 합니다.
‘생(生)에 일어나는 모든 일은 끝을 갖고 있지 않다. 결혼도 끝이 아니고, 죽음도 다만 가상적인 것에 불과하다. 생은 계속해서 흐른다. 모든 것은 그처럼 복잡하고 무질서하다. 생은 아무런 논리도 없이 이 모든 것을 즉흥 한다.’던 <생의 한가운데> 루제이 린저의 말처럼
레오의 삶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나락으로 무섭게 빠져듭니다. 그쯤이 되자 책장을 넘기던 손과 등에서 진땀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레오의 삶은, 우리의 삶은 이렇게 끝없이 복잡하고 무질서하게 아무 논리도 없이 나락으로 빠지기만 하는 것인가 하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다시 정신병원에 입원한 레오는 병원에서 깊고 오랜 잠을 자게 되고 꿈속에서 자신을 지탱해줬지만 지금은 죽어 사라진 이들의 환상을 봅니다. 이 환상과 더불어 현실에서 끊임없이 애정을 보여주는 친구들 덕분에 그는 삶의 의지를 회복하게 됩니다.
단지, 이 소설이 해피엔딩으로 끝났기 때문에 박수를 쳐주는 것만은 아닙니다. 레오가 끊임없는 애정을 보여준 친구들 덕분에 삶의 의지를 회복하고 다시금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그가 다시금 무질서하고 아무 논리도 없는 나락으로 다시 빠지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는 다시금 그 자리에서 일어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나) 자신에게도 ‘나만 함정에 빠져서 허덕이는 건 아닌가’ 하는 순간이 올 것입니다. 그 때, 땅을 짚고 일어날 용기를 그리고 주변에 그런 위기에 빠진 친구를 기다려 주고 그에게 손을 내밀어 주어야겠다는 마음이 <사우스 브로드>를 보고 들었습니다. 박수를 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우연’님은? 밤 놀이 문화는 물론이고 낮 놀이 문화에도 재주가 없다는 걸 깨닫고 책과 영화, 그림을 가지고 놀기 시작. 땅굴 파듯이 너무 혼자서만 노는 건가 싶어서 걱정'만' 하다가 2010년엔, 책과 영화, 그림의 네모난 프레임을 넘어서는 방법을 찾는 것으로 정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