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리 플래닛의 창시자 토니 휠러가 이번에는 지구상에서 가장 나쁜 나라들로 여행을 떠났다. 자국민을 어떻게 다루는지, 테러리즘과 얼마나 관련이 있는지, 타국에 얼마나 위협이 되는지에 대한 철저한 고찰 끝에 산정한 악의 계수에 따라 나쁜 나라 아홉 개를 추렸다. 리비아, 버마(미얀마), 북한, 사우디아라비아, 아프가니스탄, 알바니아, 이라크, 이란, 쿠바 등 이름 하여 나쁜 나라들은 개인적으로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일반적인 국가가 아니다.
그래서 반드시 가이드를 동반한 단체여행이나 철저히 검열된 루트 아니면 지극히 좁은 영역 내에서만 이동 가능하다. 아홉 개의 나라들 모두 여행을 꿈꾸기엔 자신 없는 곳들이라 다른 곳은 그렇다 쳐도 북한 여행기를 읽을 수 있는 경험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나는 무척 들떠 있었다.
그들은 왜 나쁜 나라가 되었을까? 독재국가의 횡포나 타국에 대한 위협으로는 결코 누구도 행복해질 수 없다. 적어도 오늘날의 행복은 다양성을 인정하는 이타주의와 두루 잘 사는 방법을 모색하는 공존의 화합으로만 쟁취할 수 있다. 지구 온난화, 자본주의의 심화, 기후이상, 석유파동, 물부족, 자원부족, 핵보유 등으로 인해 그조차 확신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지만 말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관습은 정보로 받아들이기에도 끔찍한 현상들이 많다. 철저한 이슬람 국가로 여성의 인권과 자유가 인정되지 않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여성들은 얼굴을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범죄행위다. 그래서 검정색 천을 둘러쓰고 얼굴을 가린 채 밖에 나가야 한다. 그것도 거리에 사람들이 많은 환한 낮에는 외출이 금지되고, 이른 오전이나 한밤중에만 허락된다.
45세 미만의 여성은 남자의 동행 없이는 외출할 수 없고, 여성은 사진을 찍을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의 신분을 증명하려면 남편의 사진으로만 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여성의 성기를 절단하는 할례처럼 비인간적인 관습도 여전히 활기치고 있다. 잠시 들여다봤을 뿐인데, 정치, 경제, 테러 같은 굵직한 테마로 엮지 않더라도 왜 나쁜 나라인지 알 만 하다.
하지만 단지 자국민을 탄압하고, 여성의 인권을 유린한다 해서 나쁜 나라라 칭하기엔 부족하다. 독재를 자행하는 정부는 이유 없이 자국민과 타국의 안전을 위협하고, 어느 것과의 소통도 부정하며, 화합과 화해를 행하는 모든 행위를 단절시킨다. 저자가 타국과 한 치의 소통도 허락하지 않는 나라, 모든 것을 차단하고 홀로 고립되어 있는 나라, 가진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있으면서도 자국민을 굶기는 나라, 한 치의 자유의지도 허락되지 않는 나라로 꼽는 단 하나의 나라는 바로 북한이다.
언젠가 유럽을 여행하던 중 루브르 박물관에서 쉬고 있을 때, 큐레이터로 보이는 사람이 다가와 North Korean인지 South korean인지를 물었다. 순간 부끄러웠다. South Korean이라고 대답하면 그만이었지만 괜히 얼굴이 화끈거리는 듯한 수치심을 느꼈다. 남한과 북한의 분단이 내 탓은 아니지만 South Korean이라 대답하는 순간 외국인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사라질 어떤 생각이 나를 뒤흔들었다.
그는 별 생각 없이 그저 아는 지식을 동원해 동양 여자아이에게 호의를 베풀려 대화를 시도했는지 모르지만 그 순간 나는 남한과 북한이 하나의 민족이라는 것, 누구보다 가까운 나라라는 것, 내가 북한 사람이 아니라고 행복해할 수는 없다는 것 그리고 죽도록 일만 하면서도 자유는커녕 자꾸만 굶어죽는 북한 사람들을 생각했다. 북한은 외국인이 보기에 나쁜 나라 1순위에 드는 형편없는 고립국가지만 적어도 나는, 나아가 한국 사람들은 좀 다른 생각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었던 게 솔직한 마음이다.
사실 지구상에 나쁜 나라들은 수없이 많다. 저자는 또 다른 나쁜 나라들로 소말리아, 수단, 짐바브웨, 파푸아뉴기니, 파키스탄, 동티모르, 시리아,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콩고 등을 꼽고 있다. 하나같이 많이 들어봤으나 자세히는 알지 못하는 나라들이다. 물론 여행기를 읽은 경험도 드물거나 거의 없다.
책을 읽는 내내 한 편으로는 설레면서도 두려움을 감출 수 없었다. 용기 없는 나는 결코 나쁜 나라들을 여행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여기에 열거된 나라들의 사정을 더 잘 알아야한다고 생각한다. 우리와 어떻게 같은지 또 어떻게 다른지. 우리와 동시대에 존재하는 나라와 사람들을 아는 일이야말로 혼란한 세상을 가다듬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저자가 해당 국가를 여행한 후 체험담 형식으로 썼지만 여느 일반 여행기처럼 여행을 떠나라고 촉구하는 목적이 아닌 것이 특징이다. 저자가 일방적 기준으로 꼽은 나라들을 단순히 나쁜 나라라고 칭하는 것은 꽤 위험성 높은 발언이지만 이 책은 나쁜 나라가 왜 나쁜 나라인지를 논쟁하는 글이 아니라 외국인으로서는 위험해서 선뜻 여행할 수 없는 나라를 둘러보자는 취지에서 쓰인 글이므로 새로운 도시를 여행하는 기분으로 읽으면 될 것 같다.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체험, 위험하고 나쁜 나라들을 여행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길 바란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감성소녀’님은? 아직 20대인 것이 희망. 자칭 예술애호가. 어느 날 문득 알게 되었다. 몰입과 지속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단 것을. 규격적 인간을 선호하는 세상을 거스르며 살고 싶어 책읽기를 선택했다. 로마 스페인광장에서 하루 종일 사람구경하며 책 읽는 삶을 꿈꾸지만 여의치 않은 현실에 로마로 떠나는 사람들의 여권에 도장 찍어주는 일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