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질(虎叱)

호질(虎叱)

* 열하일기 관내정사 편에 실린 연암 박지원의 글(소설?). 연암이 중국 여행 중 벽상에 걸린 격자에서 베낀 것이라고 기록하였으나, 전반적으로 연암의 필치로 되어 있고 연암 특유의 사상이 담겨 있다. 호랑이를 통해 썩은 선비를 꾸짖는 내용으로 돼있는데, 읽기에 따라 존명대의 내지 북벌론의 허구성을 신랄하게 공격한 글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 출처 : 이우성 임형택 역편, 이조후기 한문단편집(하), 일조각, 1973


  범은 예성문무(睿聖文武)·자효지인(慈孝智仁)·웅용장맹(雄勇壯猛)한 것이어서 천하에 대적할 자가 없다. 그러나 비위( 胃)가 범을 잡아 먹고, 죽우(竹牛)도 범을 잡아 먹고, 박(駁)도 범을 잡아 먹고, 오색사자(五色獅子)도 큰 나무 구멍에서 범을 잡아 먹고, 자백(玆白)도 범을 잡아 먹고, 표견(豹犬)은 날아서 범·표범을 잡아 먹고, 황요(黃要)는 범·표범의 심장을 꺼내서 먹고, 활(猾)이란 놈은 범·표범에게 잡혀 먹힌 다음 뱃속에서 범·표범의 간을 뜯어 먹고, 추이(酋耳)도 범을 만나면 찢어서 씹어 먹근다. 범이 맹용(猛용)을 만나면 눈을 감은 채 감히 뜨지도 못하는데 사람은 맹용을 두려워않고 범을 두려워하니 범의 위풍이 당당하지 않은가.
  범이 개를 잡아 먹그면 취하고 사람을 잡아 먹그면 신령하게 된다. 범이 첫번째 사람을 잡아 먹으면 그 창귀( 鬼)는 굴각(屈閣)이 되어서 범의 겨드랑이에 붙어 범을 남의 집 부엌으로 인도하여 솥전을 핥으면 그 집 주인이 배고픈 생각이 들어서 아내에게 밤참을 짓게 하며, 범이 두번째 사람을 잡아 먹으면 그 창귀는 이올(彛兀)이 되어서 범의 뺨따귀에 붙어 높은 데 올라가 우(虞)의 행동을 엿보다가 만약 골짜기에 함정이나 덫 같은 것이 있으면 먼저 가서 틀을 풀어 버리며, 범이 세번째 사람을 먹으면 그 창귀는 육혼( 渾)이 되어서 범의 턱에 붙어 그의 아는 친우들의 이름을 대고 줏어 섬긴다.
  범이 창귀들을 불러서 물었다.
  "날이 벌써 저무는데 어디서 먹을 것이 없을까?"
  굴각이란 것이 나선다.
  "내가 간밤에 점쳐 보니 뿔 달린 것도 아니고, 날개 돋친 것도 아니고 머리 새까만 놈이 눈길에 비틀비틀 성긴 발자국을 내며, 꼬리는 뒤통수에 붙어서 꽁무니를 가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올이란 것이 나선다.
  "동문(東門)에 먹을 것이 있는데 그 이름은 의(醫)이니, 입으로 백초(百草)를 머금어서 고기가 향기로울 것이며, 서문(西門)에 먹을 것이 있는데 그 이름은 무(巫)이니 백신(百神)을 섬기노라 날마다 목역하여 몸이 깨끗할 것입니다. 청컨대 이 두 가지 중에서 고기를 택하옵소서."
  범은 수염을 거스리고 노기 띤 소리로
  "의(醫)라는 것은 의(疑)이다. 의심나는 것을 가지고 사람을 치료하면서 해마다 수만 명을 죽게 만들고, 무(巫)라는 것은 무(誣)이다. 신을 속이고 백성을 유혹해서 해마다 수만 명을 죽게 한다. 수많은 망령들의 노여움이 두 것들의 뼈까지 스며들어 금잠(金蠶)으로 화했을 것이다. 독해서 먹을 수 있겠느냐." 고 했다.
  육혼이란 것이 나선다.
  "저기 숲 속에 고기가 있지요. 인간(仁肝)·의담(義膽)에다, 충심을 품고 품행이 깨끗하고, 예악(禮樂)을 받들어 지키며, 입으로 백가(百家)의 말씀을 외고, 마음에 만물의 이치를 통달하였으니, 이름은 석덕지유(碩德之儒)라, 배앙체반(背 體 )하여 오미(五味)가 고루 갖추어 있읍지요."
  범은 눈썹을 추키고 침을 흘리며 하늘을 쳐다보고 만족해서 웃고 말했다.
  "짐(朕)이 듣고자 하니 잘 아뢰어라."
  창귀들이 다투어 범에게 천거해서 뇌까린다.
  "일음일양(一陰一陽)의 도(道)를 유자(儒者)가 일관했고, 오행(五行)이 상생(相生)하고 육기(六氣)가 서로 펴 나가는 것을 유자가 인도하니 먹을 것 중에 이보다 좋은 것이 없는가 하옵니다."
  범은 갑자기 서운한 기색으로 변해서 아주 못마땅한 어조로 말한다.
  "음양(陰陽)이란 한 기(氣)의 소장(消長)인데 일음일양의 둘로 나누었으니 그 고기가 잡될 것이며, 오행은 제각기 자기 위치가 정해져 있어서 상생(相生)이란 있을 수 없는데 이제 억지로 자모(子母)의 관계를 만들고 함산( 酸)에다 비정(比定)시켜 놓았으니 그 맛이 순수치 못할 것이며, 육기(六氣)는 자연히 유행(流行)하는 것이고 인위적인 선도가 필요치 않은데 이제 망녕스레 재성(財成)이니 보상(輔相)이니 하여 자기 공로를 나타내려 하니 그것을 먹다가는 생경하고 딱딱해서 체하거나 구역이 날 것이다."
  정(鄭)나라 어느 고을에 벼슬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 학자가 살았으니 북곽선생(北郭先生)이었다. 그는 나이 40에 손수 교정해낸 책이 만 권이었고, 또 육경(六經)의 뜻을 부연해서 다시 저술한 책이 일만 오천권이었다. 천자(天子)가 그의 행의(行義)를 가상히 여기고 제후(諸侯)가 그 명망을 존경하고 있었다.
  그 고장 동쪽에는 동리자(東里子)라는 미모의 과부가 있었다. 천자가 그 절개를 가상히 여기고 제후가 그 현숙함을 사모하여, 그 마을의 둘레를 봉(封)해서 '동리과부지여(東里寡婦之閭)'라고 정표(旌表)해 주기도 했다. 이처럼 동리자가 수절을 잘 하는 부인이라 했는데 실은 슬하의 다섯 아들이 저마다 성을 달리하고 있었다.
  어느날 밤, 다섯 놈의 아들들이 서로 지껄이기를
  "강 건너 마을에서 닭이 울고 강 저편 하늘에 샛별이 반짝이는데 방안에서 흘러 나오는 말소리는 어찌도 그리 북곽선생의 목청을 닮았을까."
하고 다섯 놈이 차례로 문틈으로 들여다보았다. 동리자가 북곽선생에게
  "오랫동안 선생님의 덕을 사모했삽는데 오늘밤은 선생님 글 읽는 소리를 듣고자 하옵니다."
하고 간청하매 북곽선생은 옷깃을 바로잡고 점잖게 앉아서 시(詩)를 읊는 것이 아닌가.

      원앙새는 병풍에 그려 있고, 鴛鴦在屛
      반딧불이 흐르는데 잠 못 이뤄 耿耿流螢
      저기 저 가마솥 세발 솥은 維 維錡
      무엇을 본떠서 만들었나 云誰之型
      흥야라. 興也

  다섯 놈들이 서로 소근대기를
  "북곽선생과 같은 점잖은 어른이 과부의 방에 들어올 리가 있겠나. 우리 고을의 성문이 무너진 데에 여우가 사는 굴이 있다더라. 여우란 놈은 천년을 묵으면 사람 모양으로 둔갑할 수 있다더라. 저건 틀림없이 그 여우란 놈이 북곽선생으로 둔갑한 것이다."
하고 함께 의논했다.
  "들으니 여우의 머리를 얻으면 큰 부자가 될 수 있고, 여우의 발을 얻으면 대낮에 그림자를 감출 수 있고, 여우의 꼬리를 얻으면 애교를 잘 부려서 남의 고임을 받을 수 있다더라. 우리 저놈의 여우를 때려 잡아서 나눠 갖도록 하자."
  다섯 놈들이 방을 둘러싸고 우루루 쳐들어갔다. 북곽선생은 크게 당황하여 도망쳤다. 사람들이 자기를 알아볼까 겁이 나서 모가지를 두 다리 사이로 디리 박고 귀신처럼 춤추고 낄낄거리며 문을 나가서 내닫다가 그만 들판의 구덩이 속에 빠져 버렸다. 그 구덩이에는 똥이 가득 차 있었다. 간신히 기어 올라 머리를 들고 바라보니 뜻밖에 범이 길목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범은 북곽선생을 보고 오만상을 찌푸리고 구역질을 하며 코를 싸쥐고 외면을 했다.
  "어허, 유자(儒者)여! 더럽다."
  북곽선생은 머리를 조아리고 범 앞으로 기어가서 세 번 절하고 꿇어앉아 우러러 아뢴다.
  "호랑님의 덕은 지극하시지요. 대인(大人)은 그 변화를 본받고, 제왕은 그 걸음을 배우며, 자식된 자는 그 효성을 본받고, 장수는 그 위엄을 취하며, 거룩하신 이름은 신령스런 용의 짝이 되는지라, 풍운이 조화를 부리시매 하토(下土)의 천신(賤臣)은 감히 아랫바람에 서옵나이다."
  범은 북곽선생을 여지없이 꾸짖었다.
  "내 앞에 가까이 오지 말아라. 내 듣건대 유(儒)는 유(諛)라 하더니 과연 그렇구나. 네가 평소에 천하의 악명(惡名)을 죄다 나에게 덮어씌우더니, 이제 사정이 급해지자 면전에서 아첨을 떠니 누가 곧이듣겠느냐. 천하의 원리는 하나뿐이다. 범의 본성(本性)이 악한 것이라면 인간의 본성도 악할 것이요, 인간의 본성이 선(善)한 것이라면 범의 본성도 선할 것이다. 너희들의 떠드는 천소리 만소리는 오륜(五輪)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고, 경계하고 권면하는 말은 내내 사강(四綱)에 머물러 있다. 그런데 도회지에 코 베이고, 발꿈치 짤리고, 얼굴에도 자자(刺字)질하고 다니는 것들은 다 오륜을 지키지 못한 자들이 아니냐. 포승줄과 먹실, 도끼 톱 같은 형구(刑具)를 매일 쓰기에 바빠 겨를이 나지 않는데도 죄악을 중지시키지 못하는구나. 범의 세계에서는 원래 그런 형벌이 없으니 이로 보면 범의 본성이 인간의 본성보다 어질지 않느냐.

  (중략)

  대체 제것이 아닌데 취하는 것을 도(盜)라 하고 생(生)을 빼앗고 물(物)을 해치는 것을 적(賊)이라 하나니, 너희가 밤낮으로 쏘다니며 팔을 걷어붙이고 눈을 부릅뜨고 노햑질하면서 부끄러운 줄 모르고, 심한 놈은 돈을 불러 형님이라 부르고, 장수가 되기 위해서 제 아내를 살해하였은즉, 다시 윤리도덕을 논할 수도 없다. 뿐 아니라, 메뚜기에게서 먹이를 빼앗아 먹고, 누에에게서 옷을 빼앗아 입고, 벌을 막고 꿀을 따며, 심한 놈은 개미새끼를 젖 담아서 조상에게 바치니 잔인무도한 것이 무엇이 너희보다 더하겠느냐. 너희가 이(理)를 말하고 성(性)을 논할 적에 걸핏하면 하늘을 들먹이지만 하늘의 소명(所命)으로 보자면 범이나 사람이나 다 같이 만물중의 하나이다. 천지가 만물을 낳은 인(仁)으로 논하자면 범과 메뚜기·누에·벌·개미 및 사람이 다같이 땅에서 길러지는 것으로 서로 해칠 수 없는 것이다. 그 선악을 분별해 보자면 벌과 개미의 집을 공공연히 노략질하는 것은 홀로 천지간의 거대한 도둑이 되지 않겠는가. 메뚜기와 누에의 밑천을 약탈하는 것은 홀로 인의(仁義)의 대적(大賊)이 아니겠는가.
  범이 일찍이 표범을 안 잡아먹는 것은 동류를 차마 그럴 수 없어서이다. 그런데 범이 노루와 사슴을 잡아먹은 것이 사람이 노루와 사슴을 잡아먹은 것만큼 많지 않고 범이 마소를 잡아먹은 것이 사람이 마소를 잡아먹은 것만큼 많지 않으며, 범이 사람을 잡아먹은 것이 사람이 서로 잡아먹은 만큼 많지 않다. 지난해 관중(關中)이 크게 가물자 백성들이 서로 잡아먹은 것이 수만이었고, 전해에는 산동(山東)에 홍수가 나자 백성들이 서로 잡아먹은 것이 수만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서로 많이 잡아먹기로야 춘추시대 같은 때가 있었을까. 춘추시대에 공덕을 세우기 위한 싸움이 열에 일곱이었고, 원수를 갚기 위한 싸움이 열에 셋이었는데 그래서 흘린 피가 천리에 물들었고 버려진 시체가 백만이나 되었더니라.
  범의 세계는 큰물과 가뭄의 걱정을 모르기 때문에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원수도 공덕도 다 잊어버리기 때문에 누구를 미워하지 않으며, 운명을 알아서 따르기 때문에 무(巫)와 의(醫)와 간사에 속지 않고 타고난 그대로 천성을 다하기 때문에 세속의 이해에 병들지 않으니, 이것이 곧 범이 예성(睿聖)한 것이다. 우리 몸의 얼룩무늬 한 점만 엿보더라도 족히 문채(文彩)를 천하에 자랑할 수 있으며, 한 자 한 치의 칼날도 빌지 않고 다만 발톱과 이빨의 날카로움을 가지고 무용(武勇)을 천하에 떨치고 있다. 종이(宗彛)와 유준( 尊)은 효(孝)를 천하에 넓힌 것이며, 하루 한 번 사냥을 해서 까마귀나 솔개, 청마구리, 개미 따위에게까지 대궁을 남겨 주니 그 인(仁)한 것이 이루 말할 수 없고, 굶주린 자를 잡아먹지 않고, 병든 자를 잡아먹지 않고, 상복(喪服) 입은 자를 잡아먹지 않으니 그 의로운 것이 이루 말할 수 없다.
  불인(不仁)하기 짝이 없다. 너희들이 먹이를 얻는 것이여! 덫이나 함정을 놓는 것만으로도 오히려 모자라서 새그물, 노루망, 큰그물, 고기그물, 수레그물, 삼태그물 따위의 온갖 그물을 만들어냈으니 처음 그것을 만들어낸 놈이야말로 세상에 가장 재앙을 끼친 자이다. 그 위에 또 가지각색의 창이며 칼 등속에다 화포(火砲)란 것이 있어서, 이것을 한번 터뜨리면 소리는 산을 무너뜨리고 천지에 불꽃을 쏟아 벼락치는 것보다 무섭다.
  그래도 아직 잔학(殘虐)을 부린 것이 부족하여, 이에 부드러운 털을 쪽 빨아서 아교에 붙여 붓(筆)이라는 뾰족한 물건을 만들어냈으니 그 모양은 대추씨 같고 길이는 한치도 못 되는 것이다. 이것을 오징어의 시커먼 물에 적셔서 종횡으로 치고 찔러대는데 구불텅한 것은 세모창 같고, 예리한 것은 칼날 같고, 팽팽한 것은 활 같아서 이 병기(兵器)를 한번 휘두르면 온갖 귀신이 밤에 곡(哭)을 한다. 서로 잔혹하게 잡아먹기를 너희들보다 심히 하는 것이 어디 있겠느냐?"
  북곽선생은 자리를 옮겨 부복해서 머리를 재삼 조아리고 아뢰었다.
  "맹자(孟子)에 일렀으되 '비록 악인(惡人)이라도 목욕재계하면 상제(上帝)를 섬길 수 있다' 하였습니다. 하토(下土)의 천신(賤臣)은 감히 아랫바람에 서옵니다."
  북곽선생이 숨을 죽이고 명령을 기다렸으나 오랫동안 아무 동정이 없기에 참으로 황공해서 절하고 조아리다가 머리를 들어 우러러보니 이미 먼동이 터 주위가 밝아오는데 범은 간곳이 없었다. 그때 새벽 일찍 밭을 갈러 나온 농부가 있었다.
  "선생님, 이른 새벽에 들판에서 무슨 기도를 드리고 계십니까?"
  북곽선생은 엄숙히 말했다.
  "성현(聖賢)의 말씀에 '하늘이 높다 해도 머리를 아니 굽힐 수 없고, 땅이 두텁다 해도 조심스럽게 딛지 않을 수 없다' 하셨느니라."

 
 
  연암씨(燕岩氏)는 말한다.
  이 글은 비록 작자의 성명이 엇으나, 근세 중국인의 비분(悲憤)의 작(作)일 것이다. 세운(世運)이 암흑시대에 들어 이적(夷賊)의 화가 맹수보다 더 심한데, 지금 몰염치한 유자(儒者)들은 경전의 장구(章句)를 끼어 맞춰서 곡학아세를 일삼고 있다. 이야말로 남의 묘혈(墓穴)을 뒤지는 유자로서 승냥이나 범의 먹이도 못될 것들이 아닐까. 이제 이 글을 읽어 보매 말이 패리(悖理)한 점이 없지 않아 장자(莊子)의 거협편(  篇).도척편(盜 篇)과 취지를 같이한다고 보겠다.
  그런데 천하의 뜻 있는 인사들은 하루라도 중국을 잊고 있을 것인가? 지금 청나라가 중국 대륙을 지배한 지 사대(四代)를 지나 문치(文治)와 무비(武備)가 잘 되어서 백년 동안 안정을 누리고 세상이 아주 조용하니, 이것은 한당(漢唐)의 시대에도 못 보던 일이다. 이처럼 백성들을 잘 다스려 보살피는 것을 보매 이 또한 하늘이 보낸 명리(命吏)가 아닌가 싶다.
  옛날 어느 분이 '하늘이 순순히 명하신다'는 말에 의심을 품고 성인에게 질문하였던 바, 성인은 분명히 하늘의 뜻을 체득해서 '하늘은 말씀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행동과 사적으로 보인다'고 대답하였다. 내가 글을 읽다가 여기에 이르러 의혹되는 바가 많았다. 감히 묻건대 행동과 사적으로 보인다면서 오랑캐를 이용하여 중화(中華)를 변질시켜 놓는 것은 천하의 치욕이 아니며, 백성의 원성과 의혹은 또 얼마나 심각한 것인가? 그리고 향긋한 것과 비린내 나는 것은 저마다 신의 덕(德)에 따르는 것인데, 지금 중국의 모든 신령이 얼마나 비린내 나는 것을 흠향하고 있는가?
  그래서 인간의 처지에서 본다면 중화와 이적(夷賊)의 구분이 분명하지만 하늘의 명(命)한 바를 좇아 본다면 은우(殷우)와 주면(周冕)은 각각 시대에 따라 마련된 것이니 하필 청인(淸人)의 홍모(紅帽)만 의심을 둘 것인가. 이에 천정(天定)·인중(人衆)의 설이 그 사이에 유행하고, 인천상여(人天相與)의 원리가 도리어 후퇴해서 기(氣)에게 복종하게 되었다. 그런데 옛 성편의 말씀과 부합되지 않으면 문득 천지의 기수(氣數)가 이 모양이라고 한다. 슬프다. 이게 정말 기수란 말인가?
  슬프다! 명나라의 명맥이 끊어진 지 이미 오래다. 중국의 인사들이 변발을 한 지도 백년의 세월을 넘겼으되 자나깨나 가슴을 치며 문득 명나라를 생각하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차마 중화(中華)를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한편 청나라가 취하는 정책도 어줍잖은 것이다. 예전 호족 출신의 임금들이 마지막엔 중국에 동화된 나머지 쇠망했던 것에 비추어 징계하는 철비(鐵碑)를 새겨 전정(箭亭)에 세웠다. 그러나 저들도 항상 자기들의 복색을 부끄럽게 여기면서 오히려 자기들의 복색을 가지고 강약의 형세를 삼으려고 애를 쓰니 어찌 그다지 어리석단 말인가. 문왕(文王)·무왕(武王)의 현철하심으로도 말주(末朱)의 무너져 가는 것을 붙잡지 못했는데, 하물며 구구이 한낱 복색을 통해서 강세를 유지하려고 해서 되겠는가. 복색이 싸움 싸우기에 경편한 것으로만 말하면 북적(北狄)·서융(西戎)의 복색이라고 해서 싸움 싸우는 복색이 못 될 것이 무엇인가. 힘이 능히 서북의 다른 호족들로 하여금 도리어 중국의 습속을 좇게 할 수 있어야만 비로소 천하에 홀로 강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천하의 사람들을 오욕의 구렁에 몰아넣고서 잠깐 치욕을 참고 우리를 따르면 강하게 될 것이다'고 호령하는데, 나는 그렇게 해서 정말 강하게 될 것인지 모르겠다.
  굳이 자기네 복색을 강요한다 하더라도 신시(新市) 녹림의 사이에 눈썹을 붉게 칠하고 누런 수건을 두른 도적 무리가 자의에 의해 다른 사람과 구별했던 것처럼 되지는 못할 것이다. 가령 백성들이 한번 청나라의 홍모를 벗어서 땅에 팽개쳐 버린다면 청나라 황제는 앉아서 천하를 잃게 될 것이다. 철비를 세워 후세에 교훈을 삼으려던 것이 참으로 부질없는 것이 아닌가.
  이 글은 원래 제목이 없었는데 이제 글 가운데 '호질(虎叱)' 두 글자를 뽑아서 제목을 삼아 둔다. 중국의 산하(山河)가 맑아질 날을 기다려 보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