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영전(雲英傳)

운영전(雲英傳)

[해설]
  17세기 전반에 씌어진 애정전기소설. 한문본과 국문본이 함께 전해진다. 애정전기소설 가운데 최고의 수작으로 꼽히는 뛰어난 작품이다. 깊은 궁궐 속에 화초처럼 길러지던 궁녀 운영과 소년재사 김진사의 운명적이고도 비극적인 사랑을 감돋적으로 그려냈다. 비극적 운명을 예감하면서도 사랑의 열정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주인공의 모습이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가장 인간적인 욕망이 비극을 낳고 만다는 설정에는 사회체제에 대한 문제제기의 의미도 함축돼 있다. (이상구 역주, 17세기 애정전기소설, 월인, 1999)

[작품 읽기]

  수성궁(壽聖宮)은 안평대군의 옛 집으로, 장안성 서쪽인 인왕산 아래에 있다. 이곳은 산천(山川)이 수려하여 용이 서리고 호랑이가 걸터앉은 형세를 하고 있으며, 수성궁의 남쪽에는 사직단이 있고 동쪽에는 경복궁(景福宮)이 있다. 인왕산(仁王山) 한 줄기가 구비 구비 뻗어 내려오다 수성궁에 이르러서 우뚝 솟아올랐다. 비록 산이 높거나 험준하지는 않았지만, 산꼭대기에 올라가 내려다보면 사방으로 통하는 큰길과 저자 거리, 성안의 수많은 집들이 바둑판을 펼쳐 놓거나 별들이 늘어선 듯 역력히 가리킬 수 있었고, 실타래를 풀어서 나누어 놓은 듯이 뚜렷하였다. 동쪽을 바라보면 경복궁이 아득히 솟아 있고, 그 사이로 복도가 공중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게다가 이곳은 푸른빛을 짙게 띤 구름과 안개가 아침저녁으로 고운 태도를 자랑하니, 참으로 절승지라고 할 만했다. 그래서 당시의 주객(酒客)이나 활을 쏘며 노는 무리, 노래하고 피리 부는 아이들, 시인과 서예가들이 꽃 피고 버드나무 늘어진 봄이나 단풍이 물드는 가을이 되면 하루도 빠지지 않고 그 위에 올라가 풍월을 읊조리고 경치를 구경하며 노느라 집으로 돌아가는 것마저 잊곤 하였다.
  청파에 사는 선비인 유영(柳永)은 이 동산의 경치가 빼어나다는 것을 익히 듣고 한 번 구경하고 싶었다. 그러나 옷이 남루하고 용모와 안색이 초라하여 놀러 온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될 것을 스스로 알고 있는 터라, 정작 집을 나섰다가 주저앉은 지 오래였다.
  만력 신축년 3월 16일에 유영은 탁주 한 병을 사들고 집을 나섰다. 어린 종은 물론 이미 자기를 알아주는 친구마저 없어 몸소 술병을 허리춤에 차고 홀로 궁문(宮門) 안으로 들어가자, 그를 본 사람들마다 서로 돌아보고 손가락질을 하며 비웃었다. 유생은 부끄럽고 무료해서 이내 후원으로 들어갔다. 높은 곳에 올라서 사방을 둘러보니, 갓 전란을 격은 뒤인지라 장안의 궁궐과 성안에 가득했던 화려한 집들이 텅 빈 채 남아 있지 않았다. 무너진 담과 깨어진 기와조각, 폐쇄된 우물과 무너진 돌계단 사이에는 잡초가 무성하였으며, 동쪽 문 몇 칸만이 홀로 우뚝 솟아 있었다.
  유생은 서쪽 동산으로 걸어 들어갔다. 산과 물이 깊숙한 곳에 이르자, 온갖 풀들이 빽빽하게 우거져 맑은 연못에 그림자가 비치었으며, 땅에는 꽃이 가득히 떨어져 있었으나 사람의 자취는 찾아 볼 수 없었다. 미풍이 한 번 불자 향기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유생은 홀로 바위 위에 앉아 소동파의 '내가 조원각에 오르니 봄은 반쯤 지났는데, 땅 가득히 떨어진 꽃 쓸어버릴 사람조차 없네'라는 시구를 읊조렸다. 곧이어 허리춤에 차고 왔던 술병을 끌러 다 마시고, 술에 취해서 돌에 머리를 기댄 채 바위의 가장자리에 누웠다.
  잠시 후 유생은 술이 깨자 고개를 들고 사방을 둘러보았다. 노닐던 사람들은 다 흩어져 돌아가고 없는데 산에서는 달이 이미 떠올랐으며, 연기는 버들 눈썹에 아롱지고 바람은 꽃 뺨에 살랑거렸다. 이때 한 줄기 가느다란 말소리가 바람결에 들려왔다. 유생이 이상하여 자리에서 일어나 말소리가 나는 곳을 찾아가 보니, 한 소년이 절세(絶世)의 미인과 함께 싸리나무 가지에 마주 앉아 있다가 유생이 오는 것을 보고 흔쾌히 일어나 맞이하였다. 이에 유생이 마주 인사를 하며 물었다.
  "수재는 어떠한 사람인데, 낮이 아닌 밤에 이렇게 노닐고 있습니까?"
  소년이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옛 사람이 이르기를 '경개약구'라고 했는데, 바로 이러한 상황을 두고 말했을 것입니다."
  유생은 그들과 함께 삼발처럼 둘러앉아 서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여자가 낮은 소리로 아이를 부르자 계집종 두 명이 숲 속에서 나왔다. 여자가 그 아이들에게 일러 말했다.
  "오늘 저녁 옛 연인을 해후(邂逅)한 이곳에서 또 뜻하지 않게 가객(佳客)을 만나게 되었구나. 오늘처럼 좋은 밤을 헛되이 쓸쓸하게 보낼 수는 없으니, 너희들은 술과 안주를 준비하고 아울러 붓과 벼루를 가져오도록 해라."
  두 계집종이 명을 받들고 갔다가 잠시 후에 술과 안주를 가지고 되돌아 왔는데, 나는 새가 오가는 것처럼 발걸음이 가벼웠다. 유리로 된 술 단지에는 자하주가 가득히 담겨 있었으며, 진귀한 과일과 훌륭한 음식 등 모두가 인간 세상에서는 볼 수 없는 것들이었다. 술을 세 잔 마신 후에 여자가 새로운 사곡을 지어 부르며 유생에게 술을 권했다.

      重重深處別故人 깊고 깊은 궁궐에서 이별한 옛 연인,
      天緣未盡見無因 하늘이 맺어준 인연 다하지 않아 뜻밖에 만났네.
      幾番傷春繁華時 몇 번이나 꽃이 활짝 핀 봄날을 슬퍼했던고?
      爲雲爲雨夢非眞 구름 되고 비가 되어 즐김은 한갓 꿈일 뿐인 것을.
      消盡往事成塵後 지난 일 모두 닳아 없어져 티끌이 되었건만,
      空使今人淚滿巾 공연히 우리로 하여금 눈물로 수건 적시게 하네.

  여자는 노래를 마치고 탄식하며 울음을 삼켰으나 구슬 같은 눈물이 얼굴 가득히 흘러 내렸다. 유생이 이상하여 자리에서 일어나 절하며 말했다.
  "제가 비록 비단처럼 고운 글을 짓는 재주는 없지만, 일찍부터 시문(詩文)을 일삼았기 때문에 글을 쓸 때 드린 공력(功力)을 조금은 알아볼 수 있습니다. 지금 이 노래를 들으니, 격조가 맑고 뛰어나되 담긴 뜻이 슬프고 처량하여 매우 이상하게 생각됩니다. 오늘밤의 모임은 달빛이 대낮처럼 밝고 맑은 바람이 천천히 불어와 기꺼이 즐길 만한데, 서로 마주하고 슬피 우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또 술잔을 한 번 주고받아 정의(情義)가 이미 두터워졌는데도 성명을 말씀하지 않으시고 속마음도 털어놓지 않으시니 의아스럽기만 합니다."
  유생이 먼저 자기 이름을 말하고 대답을 강요하자, 소년이 대답하여 말했다.
  "성명을 말씀드리지 않은 것은 까닭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대가 강요한다면 성명을 아뢰는 것이 어찌 어렵겠습니까? 그러나 말씀을 드리려고 하면 말이 길어집니다."
  소년은 오래도록 슬픔에 젖어 괴로워하다가 말을 이었다.
  "제 성은 김가입니다. 10살 때 시문에 능통하여 학당(學堂)에 이름이 났으며, 14살 때 진사 제2과에 급제하여 당시 사람들이 모두 저를 김진사(金進士)라고 불렀습니다. 저는 젊은 혈기와 호탕한 마음을 억제하지 못하고, 또 이 여자와의 연고 때문에 부모님께서 물려주신 육신으로 마침내 불효의 자식이 되어, 천지간에 한 죄인으로써 이름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굳이 제 이름을 알려고 하십니까? 이 여자의 이름은 운영(雲英)이며, 저 두 여자의 이름은 녹주(綠珠)와 송옥(宋玉)입니다. 이들은 모두 옛날 안평대군(安平大君)의 궁녀였습니다."
  유생이 말했다.
  "말을 꺼내었으되 다 하지 않는 다면, 이는 아예 처음부터 말을 하지 않는 것보다 못합니다. 안평이 한창 활동하던 때의 일과 진사가 슬퍼하는 연유를 상세히 들을 수 있겠습니까?"
  진사가 운영을 돌아보며 말했다.
  "해가 여러 번 바뀌고 세월이 이미 오래 되었는데, 너는 그 때의 일을 기억할 수 있겠느냐?"
  운영이 대답했다.
  "가슴속에 쌓인 원한을 어느 날인들 잊을 수 있겠습니까? 제가 시험삼아 말할 테니, 낭군께서 곁에 계시면서 빠진 부분이 있으면 보충해 주십시오."
  이에 운영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장헌대왕의 아들 8대군 가운데 안평대군이 가장 영리하고 뛰어났습니다. 임금께서는 그를 매우 사랑하여 상금을 무수히 내려주신 까닭에 전민(田民)과 재물이 대군들 가운데 가장 많았습니다. 대군이 13살 때 사궁(私宮)으로 나가 살게 되었는데, 그 궁 이름이 곧 수성궁입니다. 대군은 유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 자처하여 밤에는 독서를 하고 낮에는 시를 짓거나 예서를 쓰는 등 일찍이 짧은 시간도 헛되이 보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당시의 문인과 뛰어난 선비들이 모두 수성궁에 모여들어 실력을 겨루었는데, 때로는 새벽닭이 세 번 울 때까지 학문을 토론하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대군은 필법에도 뛰어나 온 나라에 명성이 자자했습니다. 문종께서 왕위에 오르시기 전에 집현전의 여러 학사들과 함께 안평의 필법을 거론하면서 항상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내 아우가 만약 중국에서 태어났다면 비록 왕일소에게는 미치지 못하겠지만, 어찌 조송설보다 못하겠는가!"
  문종께서는 이렇듯이 안평대군에 대한 칭찬을 마지 아니하셨습니다.
  하루는 대군이 저희들에게 말했습니다.
  "천하의 온갖 재주는 반드시 조용한 곳으로 가서 공부를 한 뒤에야 이룰 수 있다. 도성문(都城門) 밖에 산천이 고요하고 마을에서 좀 멀리 떨어진 곳이 있는데, 이곳에서는 학업을 오로지 할 수 있을 것이다."
  대군은 즉시 그 위에다 깨끗한 집 10여 칸을 짓고, 그 집에 현판을 붙여 비해당(匪懈堂)이라고 하였습니다. 또 그 옆에 단(壇) 하나을 축조하여 이름을 맹시단(盟詩壇)이라 하였는데, 이는 무릇 명분을 돌아보고 의리를 생각하라는 뜻이었습니다. 당시의 뛰어난 문장가와 서예가들이 모두 그 단에 모이었는데, 문장은 성삼문이 으뜸이었으며, 필법은 최흥효가 으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 역시 대군의 재주에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하루는 대군이 술에 취한 채 여러 궁녀들을 불러놓고 말했습니다.
  "하늘이 재주를 내릴 때 어찌 유독 남자에게만 많이 내리고, 여자에게는 적게 내렸겠느냐? 오늘날 문장가로 자처하는 사람들이 적은 것은 아니나, 대개 서로가 엇비슷하여 특별히 뛰어난 자가 없으니, 너희들도 힘쓰도록 해라."
  이어서 대군은 궁녀들 가운데 나이가 어리고 얼굴이 어여쁜 자 10명을 뽑아서 가르쳤습니다. 먼저 <소학언해>를 주어 외우게 한 뒤에 <중용>·<대학>·<논어>·<맹자>·<시경>·<서경>·<통사>를 모두 가르쳤습니다. 또 이백과 두보 등 당시(唐詩)를 몇 백 수 뽑아서 가르치니, 과연 5년도 채 안되어 10명 모두가 재주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대군은 궁에 돌아오면 항상 우리를 안전(眼前) 앉히고 시를 짓게 하여 잘못된 곳을 바로잡아 주었으며, 시의 고하(高下)를 차례대로 매기고 상과 벌을 내려서 우리를 격려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우리의 탁월한 기상은 비록 대군에게는 미치지 못했지만, 음률의 청아함과 구법(句法)의 완숙함은 성당 시인들의 울타리를 엿볼 만했습니다. 그 10명의 이름은 소옥(小玉)·부용(芙蓉)·비경(飛瓊)·비취(翡翠)·옥녀(玉女)·금련(金蓮)·은섬(銀蟾)·자란(紫鸞)·보련(寶蓮)·운영(雲英)이었는데, 제가 바로 운영입니다.
  대군은 대체로 우리를 잘 보살펴 주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항상 궁궐 안에서만 생활하고 다른 사람과는 전혀 대화를 나누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대군은 매일 문사들과 함께 술을 마시고 기예를 다투었으면서도 일찍이 우리가 그 근처에 얼씬거리는 것을 한 번도 허락하지 않았는데, 이것은 궁궐 밖의 사람들이 혹 우리의 존재를 알까 염려했기 때문입니다.
  항상 대군은 우리에게 명령하여 말하곤 했습니다.
  "시녀가 한 번이라도 궁문을 나가면 그 죄는 죽어 마땅할 것이요, 궁궐 밖의 사람이 궁녀의 이름을 알기만 해도 또한 죽일 것이다."
  하루는 대군이 밖에서 돌아와 우리를 불러 놓고 말했습니다.
  "오늘 문사 모모(某某)와 함께 술을 마시고 있는데 한 줄기 푸른 구름이 궁중의 나무에서 일어나 성벽 꼭대기를 둘러싸기도 하고, 또 산기슭으로 날아가기도 하였다. 내가 먼저 오언절구(五言絶句) 한 수를 짓고 손님들에게 운(韻)에 맞춰 시를 짓게 하였는데, 모두 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너희들이 나이 순서대로 각각 시를 지어 올려라."
  소옥이 먼저 지어서 올렸습니다.

      綠煙細如織 푸른 연기 비단처럼 가늘어,
      隨風半入門 바람 따라 함께 궁문(宮門)으로 들어오네.
      依微深復淺 흐릿흐릿 깊었다 다시 옅어지니,
      不覺近黃昏 황혼이 가까워 옴을 깨닫지 못하였네.

  부용이 지어 올렸습니다.

      飛空逢帶雨 공중에 날아올라 비를 두르더니,
      落地復爲雲 땅에 떨어져 다시 구름이 되었네.
      近夕山光暗 저녁이 가까워 오자 산 빛은 어두운데,
      幽思向楚君 그윽한 생각 초(楚)나라 임금을 향하네.

  비취가 지어 올렸습니다.

      覆花蜂失勢 구름이 꽃을 덮으니 벌은 세를 잃고,
      籠竹鳥迷巢 대숲에 아롱지니 새는 깃들 곳을 찾지 못하네.
      黃昏成小雨 황혼 녘엔 가느다란 비가 되어 내리니,
      窓外聽蕭蕭 소슬한 빗소리 창 밖에서 들려오네.

  비경이 지어 올렸습니다.

      小杏難成眼 작은 살구나무 싹 틔우기도 어려운데,
      孤篁獨保靑 외로운 대나무 홀로 푸른 빛 간직하였네.
      輕陰暫見重 어둑어둑하여 문득 다시 바라보니,
      日暮又昏冥 어느새 날 저물어 황혼이 되었구나.

  옥녀가 지어 올렸습니다.

      蔽日輕紈細 해를 가리운 구름 고운 비단처럼 가벼운데,
      橫山翠帶長 산을 가로질러 푸른 빛 길게 드리웠네.
      微風吹漸散 미풍이 불어오자 점점 흩어지더니,
      猶濕小池塘 이내 작은 연못만 적실 뿐이네.

  금련이 지어 올렸습니다.

      山下寒煙積 산아래 차가운 구름이 쌓이더니,
      橫飛宮樹邊 비스듬히 궁중 나무가로 날아들었네.
      風吹自不定 바람 불어 이리저리 흩날리더니,
      斜日滿蒼天 푸른 하늘에 노을이 가득하네.

  은섬이 지어 올렸습니다.

      山谷繁陰起 산골짜기에 짙은 구름 피어오르니,
      池臺綠影流 연못 누각에 푸른 그림자 흐르네.
      飛歸無處覓 날아서 돌아갈 곳 찾지 못하고,
      荷葉露珠留 이슬방울 되어 연잎에 머물렀네.

  자란이 지어 올렸습니다.

      早向洞門暗 이른 아침 마을 어귀가 어둡더니,
      橫連高樹低 비끼어 높은 나무 아래로 이어졌네.
      須臾忽飛去 잠깐 사이에 홀연히 날아가,
      西岳與前溪 서쪽 묏부리와 앞 시내에 걸쳐 있네.

  제가 또 지어 올렸습니다.

      望遠靑煙細 저 멀리 보이는 푸른 구름 고우니,
      佳人罷織紈 아름다운 이는 깁 짜기를 마치었구나.
      臨風獨   바람을 맞으며 홀로 슬퍼하더니,
      飛去落巫山 날아가 무산(巫山)에 떨어졌도다.

  보련이 지어 올렸습니다.

      短壑春陰裡 짧은 골짜기 봄 그늘 속,
      長安水氣中 장안의 물 기운 속에서 일어나더니,
      能令人世上 홀연히 사람 사는 세상을,
      忽作翠珠宮 푸른 구슬 궁궐로 만들었네.

  대군이 시를 다 살펴보고는 크게 놀라며 말했습니다.
  "비록 만당의 시와 비교를 하더라도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것이며, 근보 이하는 채찍을 잡을 수 없을 것이다."
  대군이 두세 번 읊조리고도 시의 높고 낮음을 분별치 못하더니, 한참 있다가 말했습니다.
  "부용의 시는 초(楚)나라 임금을 사모한 것이기에 내가 매우 가상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비취의 시는 격조가 아름답고, 옥녀의 시는 생각이 뛰어나면서도 마지막 구에 넉넉한 뜻이 은은하게 깃들어 있으니, 마땅히 이 두 시를 으뜸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대군은 또 말했습니다.
  "내가 처음 볼 때는 우열을 분별하지 못했는데 다시 음미하면서 자세히 살펴보니, 자란의 시가 생각이 심원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감탄하며 춤추게 하는구나. 나머지 시들도 모두 맑고 고우나, 오로지 운영의 시에만 쓸쓸히 님을 그리워하는 뜻이 드러나 있다. 모르겠구나, 네가 생각하는 사람이 대체 어떤 사람이냐? 마땅히 심문을 해야 하겠지만 네 재주가 아까워 잠시 놓아두노라."
  저는 즉시 뜰로 내려가 엎드려 울면서 대답했습니다.
  "시를 짓는 사이에 우연히 드러나게 된 것일 뿐입니다. 어찌 다른 뜻이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이제 대군의 의심을 받게 되었으니, 저는 만 번 죽어도 아깝지 아니합니다."
  대군이 앉으라고 명하면서 말했습니다.
  "시는 성정(性情)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감추어 숨길 수가 없다. 너는 더 이상 말하지 말아라."
  대군은 즉시 비단 10단(端)을 꺼내어 10명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일찍이 대군은 저에게 마음 둔 적이 없었으나, 궁중 사람들은 모두 대군이 저에게 마음을 두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 10명은 모두 동쪽 방으로 물러 나와 촛불을 환하게 밝히고 칠보 책상 위에 {당률} 1권을 올려놓았습니다. 그리고 옛 사람이 지은 궁원시들의 고하(高下)를 논했습니다. 저는 홀로 병풍에 기대어 진흙으로 빚은 사람처럼 말을 하지 않고 조용히 앉아 있었습니다. 그러자 소옥이 저를 돌아보며 말했습니다.
  "오늘 낮에 부연시로 주군의 의심을 받게 된 것이 은근히 걱정되어 말을 하지 않는 것이냐? 아니면 주군이 너와 비단 자리에서 사랑의 기쁨을 나누려는 마음을 갖고 있기 때문에 속으로 좋아서 말을 하지 않는 것이냐? 네가 가슴속에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 지 알 수가 없구나."
  이날 밤 자란이 지성으로 저에게 물었습니다.
  "여자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시집가고자 하는 마음은 사람마다 다 있다. 네가 그리워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는 없지만, 네 얼굴이 날마다 점점 여위어 가고 있다. 이것이 염려되어 진정으로 묻는 것이니, 모름지기 숨기지 않길 바란다."
  저는 자리에서 일어나 사례하며 말했습니다.
  궁인(宮人)이 매우 많아 시끄럽게 떠들까 두려워서 감히 입을 열지 못했는데, 이제 네가 진정으로 물으니 어찌 감히 숨기겠는가? 지난 해 가을 누런 국화가 처음 피고 단풍잎이 막 시들려고 할 때, 대군이 혼자 서당(書堂)에 앉아 시녀들에게 먹을 갈고 비단을 펼치게 한 다음 칠언사운(七言四韻) 10수를 쓰고 계셨어. 이때 어린 종이 나아와 아뢰었네.
  "자칭 김진사(金進士)라고 하는 젊은 유생(儒生)이 뵙기를 청합니다."
  대군은 기뻐하며 말씀하셨네.
  "김진사가 왔구나!"
  대군이 그를 맞아들이게 하니, 무명옷을 입고 가죽띠를 맨 선비가 성큼성큼 계단을 올라오는데 마치 새가 날개를 편 듯하고, 자리에 이르러 절하고 앉으니 그 용모가 신선 같았어. 대군은 진사를 보자마자 마음이 기울어 즉시 자리를 옮겨서 마주 앉았네. 그러자 진사가 비키어 앉으며 사례하여 말했네.
  "외람되게 후한 보살핌을 입고 거듭 존명(尊命)을 욕되게 하였는데도 이렇듯 기꺼이 맞아주시니 송구스럽기 그지없습니다."
  대군은 진사를 위로하며 말씀하셨네.
  "오래도록 그대의 명성을 우러렀는데, 이렇게 좌굴관개 온 집안이 빛나는구려. 나의 기쁨이 뭇 벗들에게 얻은 것보다 크도다."
  진사가 처음 들어올 때 이미 우리들과 얼굴을 마주치게 되었네. 그러나 대군은 진사가 나이 어린 유생이기 때문에 마음속으로 편히 여기시고 우리들에게 자리를 피하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으셨네.
  이어서 대군은 진사에게 말씀하셨네.
  "가을 경치가 매우 좋으니 시 한 수를 내려 이 집을 빛내 주기 바라네."
  진사가 자리를 비키어 앉으며 말했네.
  "헛된 명성 뿐이요 실질이 없으니, 시의 율격을 제가 어떻게 감히 알 수 있겠습니까?"
  대군은 금련에게 노래를 부르게 하고, 부용에게 거문고를 타게 하며, 보련에게 퉁소를 불게 하고, 비경에게 술잔을 받잡게 하며, 나에게는 벼루를 받들라고 하셨네. 이때 내 나이는 17살이었어. 낭군을 한 번 뵙고는 정신이 혼미하고 마음이 어지러웠네. 낭군 역시 나를 돌아보더니 웃음을 머금은 채 자주 눈길을 보내곤 하셨지. 이때 대군이 진사에게 말씀하셨네.
  "내가 그대를 참으로 후하게 대우하였는데, 그대는 어찌 고고하게 한 번 읊기를 아껴하여 이 집을 무안케 하는가?"
  그러자 진사는 즉시 붓을 잡고 오언사운 한 수를 썼네.

      旅雁向南去 나그네 기러기는 남쪽으로 날아가고,
      宮中秋色深 궁중에는 가을 빛 깊었네.
      水寒荷折玉 물이 차니 연꽃은 아름다움을 잃고,
      霜重菊垂金 서리 거듭 내리니 국화는 금빛을 드리웠네.
      綺席紅顔女 비단 자리에 앉은 꽃다운 여인은,
      瑤鉉白雪音 구슬로 만든 줄로 백설곡을 연주하네.
      流霞一斗酒 유하주 한 말에,
      先醉急難禁 성급함을 금치 못하고 먼저 취하네.

  대군은 두세 번 읊조리더니 놀라며 말씀하셨네.
  "참으로 천하의 기재(奇才)라고 할만 하도다! 어찌하여 이렇듯 늦게 만났던고!"
  우리 열 사람은 일시에 돌아보며 모두 놀란 얼굴을 하고 말했었지.
  "이는 틀림없이 왕자진이 학을 타고 속세에 내려온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어찌 이런 사람이 있으리오!"
  대군은 진사에게 술잔을 권하며 물었네.
  "옛날 시인들 가운데 누가 종장(宗匠)이 되겠는가?"
  진사가 대답했지.
  "제 소견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백(李白)은 천상의 신선으로, 오래도록 옥황상제(玉皇上帝)의 향안전(香案前)에 있다가 현포에 놀러 와서 옥액(玉液)을 다 마시고, 취흥을 이기지 못하여 만년 묵은 나무에서 구슬 꽃을 꺾어 든 채 바람을 타고 인간 세계에 떨어진 기상입니다. 노조린과 왕발은 해상(海上)의 선인(仙人)으로, 해와 달이 출몰하고 구름이 변화하며, 푸른 파도가 요동하고 고래가 물을 뿜으며, 섬이 아득하고 초목이 무성하며, 꽃처럼 일렁이는 물결과 마릉잎, 물새들의 노래, 교룡(蛟龍)의 눈물을 모두 흉금에 간직한 것이 그의 시의 조화입니다. 맹호연은 음향(音響)이 가장 높은데, 그는 사광에게 음률을 배우고 익힌 사람입니다. 이의산은 선술(仙術)을 배워 일찍부터 시마(詩魔)를 부렸으니, 그가 일생 동안 지은 시는 귀신의 말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그 나머지 잡다한 사람들이야 어찌 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대군이 말씀하셨네.
  "매일 문사들과 함께 시에 대해서 논할 때마다 두초당을 으뜸으로 삼는 사람이 많은데, 자네는 어찌하여 이렇게 말을 하는가?"
  진사가 대답했네.
  "그렇습니다. 속된 선비들이 좋아하는 것으로 말한다면, 회(膾)와 구운 고기가 사람의 입을 즐겁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두자미의 시는 짐짓 회와 구운 고기입니다."
  대군이 물으셨네.
  "두보는 온갖 문체를 구비하고 있으며 비흥이 매우 정교한데, 그대는 어찌하여 두초당을 가볍게 여기는가?"
  진사가 사죄하며 대답했네.
  "제가 어떻게 감히 두보를 가벼이 여기겠습니까? 그의 장점을 논한다면, 한무제가 미앙궁에 납시어 사방의 오랑캐들이 미쳐 날뛰는 것을 분하게 여기시고 장수들에게 정벌케 하니, 곰처럼 힘이 센 백만 명의 군사가 수천 리에 쭉 뻗어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의 위대한 점을 말한다면, 사마상여로 하여금 장문부를 짓게 하고 사마천으로 하여금 봉선서을 짓게 한 것과 같습니다. 신선에서 구한다면, 동방삭이 좌우에서 모시고 서왕모가 천도(天桃)를 바칠 만합니다. 이 때문에 두보의 문장은 온갖 문체를 구비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백과 비교한다면, 하늘과 땅을 비교할 수 없고 강과 바다가 다른 것과 같습니다. 왕유와 맹호연에 비교한다면, 두보가 수레를 몰아 앞서 달리고, 왕유와 맹호연이 채찍을 잡고 길을 다툴 것입니다."
  대군이 말씀하셨네.
  "그대의 말을 들으니 가슴속이 확 트이며, 마치 긴 바람을 타고 태청궁에 오른 듯 황홀하네. 다만 두보의 시는 천하의 높은 문장이라, 비록 악부에 부족한 점이 있으나 어찌 왕유·맹호연과 함께 길을 다투겠는가? 그러나 이 문제는 잠시 놓아두고, 그대가 또 시 한 수를 읊어서 이 집 전체를 더욱 빛내주게."
  진사는 즉시 칠언 사운 한 수를 지어서 읊었어.

      煙散金塘露氣凉 연기는 아름다운 못에서 흩어지고 이슬 기운 서늘한데,
      碧天如水夜何長 하늘은 강물처럼 푸르고 밤은 길기만 하네.
      微風有意吹垂箔 가벼운 바람은 뜻이 있는 듯 구슬발에 불고,
      白月多情入小塘 밝은 달은 다정한 듯 작은 연못에 드네.
      庭畔陰開松反影 뜰 가에 그늘 열리니 소나무는 그림자 돌이키고,
      盃中波好菊留香 잔 속의 술이 일렁이니 국화 향기 머물렀네.
      阮公雖少頗能飮 완공이 비록 젊으나 자못 술 마실 수 있으니,
      莫怪瓮間醉後狂 술항아리 사이에서 취한 뒤의 광기(狂氣)를 괴이히 여기지 말라.

  대군은 더욱 기이하게 여겨 자리 앞으로 나가 진사의 손을 잡고 말씀하셨네.
  "진사는 오늘날의 재사(才士) 아니기 때문에 내가 능히 그 고하(高下)를 논할 수가 없구려. 또 문장과 필법이 능숙할 뿐 아니라 매우 신묘하기까지 하니, 하늘이 그대를 우리 동방(東方)에 태어나게 한 것은 반드시 우연이 아닐 것일세."
  대군은 또 김진사에게 초서(草書)를 쓰게 하셨네. 진사가 붓을 휘갈기는 사이에 잘못하여 붓끝의 먹이 내 손가락에 떨어졌는데, 마치 파리의 날개 같았어. 내가 이것을 영광으로 생각하고 닦아 없애지 않자, 좌우에 있던 궁인들이 모두 돌아보면서 웃고는 용문에 오른 것에 비유하였지.
  이윽고 어둠이 깊어져 경루가 시간을 재촉하자, 대군이 졸린 듯 기지개를 펴면서 말씀하셨네.
  "내가 취했도다. 그대도 물러가 쉬도록 하라. 그리고 '마음이 있어 거문고를 안고 오네'라는 말이 있으니, 잊지 말고 내일 아침에 다시 찾아오게."
  다음날 대군은 진사가 지은 2편의 시를 두세 번 읊조리시더니 경탄하며 말씀하셨어.
  "마땅히 근보와 더불어 자웅(雌雄)을 다툴 만하다. 그러나 그 청아한 태도는 근보보다 뛰어나도다."
  나는 이때부터 잠자리에 들어도 잠을 이룰 수가 없고 마음이 심란하여 밥을 먹지도 못했으며, 옷이 따뜻한 것도 알지 못했는데, 너는 기억이 나지 않느냐?

  (중략 : 운영은 온갖 우여곡절 끝에 김진사와의 밀회를 기약한다. 아홉 궁녀가 운영의 처지를 이해하고 나서서 도와줌으로써 가능한 일이었다.)

  진사는 그날 몰래 수성궁을 살펴보았는데, 담장이 높고 험준해서 몸에 날개를 달지 않으면 넘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와 묵묵히 말을 하지 않고 근심스런 얼굴로 앉아 있었습니다. 진사의 노비 가운데 이름이 특(特)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본래 재주가 많기로 소문이 나 있었습니다. 특이 진사의 안색을 보더니 앞으로 나와 무릎을 꿇고 말했습니다.
  "진사 어른! 필히 세상에 오래 머물지 못할 것입니다."
  말을 마친 특은 뜰에 엎드려 울었습니다. 이에 진사가 마음에 품고 있던 이야기를 모두 털어놓자, 특이 말했습니다.
  "어찌 일찍이 말을 하지 않으셨습니까? 제가 마땅히 그 일을 도모하겠습니다."
  특이 즉시 사다리를 만들었는데 아주 가볍고 단순했으며, 능히 접거나 펼 수 있었습니다. 둘둘 말면 병풍을 접은 것과 같고, 펼치면 대여섯 길 정도 되어 손으로 운반할 수도 있었습니다. 특이 사용법을 가르쳐 주며 말했습니다.
  "이 사다리를 가지고 궁궐 담에 오르고, 다시 안에서 접었다 폈다 하십시오. 내려올 때도 역시 그와 같이 하십시오."
  진사가 특에게 뜰에서 시험해 보게 하니, 과연 그의 말과 같아서 진사는 매우 기뻤습니다. 그날 저녁 진사가 가려고 할 때, 특이 또 품속에서 짐승의 털가죽으로 만든 버선을 꺼내며 말했습니다.
  "이것이 없으면 가기 어려울 것입니다."
  진사가 털가죽 버선을 신고 걸어가니, 나는 새처럼 가벼워 땅을 밟아도 발자국 소리가 나지 않았습니다. 진사는 이러한 꾀로 궁궐 안팎의 담을 넘어 들어와 대나무 숲 속에 엎드려 있는데, 달빛은 낮처럼 밝고 궁궐 안은 조용하기만 했습니다. 조금 후에 어떤 사람이 안에서 나와 산보를 하면서 낮게 시를 읊조렸습니다. 진사는 대나무를 헤치고 머리를 내밀며 말했습니다.
  "오시는 분은 누구신지요?"
  그 사람이 웃으면서 대답했습니다.
  "낭군께서는 나오십시오! 나오십시오!"
  진사는 성큼성큼 걸어나와 절하며 말했습니다.
  "나이 어린 사람이 풍류의 흥취를 이기지 못하여 만 번 죽을 죄를 무릅쓰고 감히 이곳에 왔습니다. 원컨대 낭자는 저를 불쌍하게 여겨주십시오."
  자란이 말했습니다.
  "진사가 오기를 큰 가뭄에 비구름 바라 듯이 고대하였습니다. 이제 다행히 뵙게 되니 저희들은 살았습니다. 낭군께서는 의심치 마십시오."
  자란이 즉시 진사를 인도하여 안으로 들어왔는데, 진사는 층계에서부터 굽은 난간을 따라 어깨를 웅크리고 들어왔습니다. 저는 사창(紗窓)을 열어 둔 채 옥등(玉燈)을 밝히고 앉아 짐승 모양을 한 금화로에 울금향을 피웠으며, 유리(琉璃)로 된 책상 위에 {태평광기} 한 권을 펼쳐 놓고 있었습니다. 진사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제가 자리에서 일어나 맞이하며 절하자, 낭군도 답배(答拜)를 하고 손님과 주인의 예절에 따라 동서(東西)로 나누어 앉았습니다. 저는 자란에게 진수성찬(珍羞盛饌)을 마련케 하여 함께 자하주(紫霞酒)를 따라 마셨습니다. 술이 세 잔 정도 돌자, 진사가 짐짓 취한 척하면서 말했습니다.
  "밤이 얼마나 깊었습니까?"
  자란은 진사가 말한 뜻을 알아채고 휘장을 드리우며 문을 닫고 나갔습니다. 저는 등불을 끄고 진사와 함께 잠자리에 들었는데,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윽고 밤이 새려하자 뭇 닭들이 새벽을 알렸으며, 진사는 일어나 궁궐 밖으로 나갔습니다. 이 뒤로부터 진사는 매일 날이 어두워지면 들어오고 날이 새면 나가곤 했습니다. 정과 마음은 갈수록 깊고 친밀해져 우리는 이러한 만남을 멈출 줄을 몰랐습니다. 그러나 궁궐 안의 눈 위에는 진사의 발자국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궁녀들은 모두 위태롭게 생각하였습니다.
  어느 날, 진사는 갑자기 좋은 일이 끝나면 화가 이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크게 두려워하면서 종일 슬퍼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노비 특이 밖에서 들어오면서 말했습니다.
  "제 공이 매우 큰데, 아직껏 상을 주지 않으셔도 되는 것입니까?"
  진사가 말했습니다.
  "가슴에 새겨 잊지 않고 있으며, 조만간 틀림없이 상을 후하게 주겠노라."
  특이 말했습니다.
  "지금 안색을 보니 또 근심이 있는 듯한데, 무슨 까닭인지 모르겠나이다."
  진사가 말했습니다.
  "운영을 보지 않으면 병이 심장과 뼈에 사무치고, 보려고 하면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큰 죄를 짓게 되니, 어찌 근심스럽지 않겠느냐?"
  특이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운영을 훔쳐 업고 달아나지 않습니까?"
  진사는 그럴 듯하게 생각하고, 그날 밤 특의 꾀를 저에게 말했습니다.
  "특은 노비이지만 본래 꾀가 많아서 이러한 꾀로서 지휘하는데, 그대 생각은 어떠하오?"
  제가 허락하며 말했습니다.
  "제 부모님은 재산이 매우 넉넉해서 제가 궁에 들어올 때 의복과 보화를 많이 실어 보내셨습니다. 게다가 주군이 하사(下賜)한 것도 매우 많으니, 이것들을 모두 버려 두고 갈 수는 없습니다. 이제 운반하려고 하면 비록 말이 10필(匹)이라도 다 옮길 수가 없을 것입니다."
  진사가 집으로 돌아가 이 사실을 특에게 말하자, 특이 매우 기뻐하며 말했습니다.
  "제 친구들 가운데 힘이 센 이가 17명이나 되는데, 이들은 매일같이 강탈을 일삼고 있으나 나라 사람들도 능히 당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와는 매우 절친한 사이이기 때문에 오로지 제 명령대로 따를 것입니다. 이들에게 운반하게 한다면 태산 또한 옮길 수 있을 것입니다."
  진사가 궁궐로 들어와 저에게 그 말을 전했습니다. 저는 그럴 듯하게 생각하고 밤마다 제 물건을 수습하여 7일째 되던 날 밤에 모두 궁궐 밖으로 옮겼습니다. 그러자 특이 말했습니다.
  "이처럼 귀중한 보물을 본댁에 쌓아 두면 큰 상전께서 반드시 의심할 것이고, 제 집에 쌓아 두면 남들이 반드시 의심할 것입니다. 그러니 산 속에 구덩이를 파서 묻고 단단히 지키는 것이 좋겠습니다."
  진사가 말했습니다.
  "만약 잃어버리게 된다면 나와 너는 도적의 누명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니, 너는 삼가서 잘 지키도록 해라."
  특이 말했습니다.
  "제 계획이 이처럼 심오하고 제 벗들이 이처럼 많으니, 천하에 어려울 일이 없습니다. 하물며 긴 칼을 들고서 밤낮으로 자리를 떠나지 않고 지킨다면 제 눈은 도려낼 수는 있어도 이 보물은 빼앗을 수 없으며, 제 다리를 자를 수는 있어도 이 보물은 취할 수 없을 것입니다. 염려하지 마십시오."
  무릇 특은 이 귀중한 보물을 얻은 이후에 저와 진사를 산골짜기로 유인하여 진사를 죽이고, 저와 재물을 자기가 차지할 계획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진사는 세상 물정에 어두운 선비인지라, 그것을 몰랐습니다.
  이때 대군은 이전에 지은 비해당에 현판(懸板)을 달기 위해 아름다운 글을 얻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여러 손님들의 시가 모두 마음에 차지 않자, 굳이 진사를 초대하여 잔치를 베풀고 시를 지어달라고 간청을 했습니다. 진사는 붓을 한 번 휘둘러 써 나갔는데, 글이 썩 잘 되어 글자 한 자도 덧붙일 것이 없었습니다. 그 시에는 산수의 경치와 비해당의 모습이 극진하게 표현되지 않은 것이 없었으니, 비바람을 놀라게 하고 귀신을 통곡하게 할 만했습니다. 대군은 구절마다 칭찬하며 말했습니다.
  "뜻밖에 오늘 왕자안을 다시 보는구나!"
  대군은 읊기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다만, 진사가 지은 시에 '담장을 좇아서 그윽이 풍류(風流曲)을 훔치네'라는 구절이 있었는데, 대군은 이 구절에서 읊기를 멈추고 진사를 의심했습니다. 이에 진사가 자리에서 일어나 대군에게 절하며 말했습니다.
  "제가 취해서 인사불성이 되었습니다. 원컨대 물러나고자 합니다."
  대군은 시종에게 진사를 부축하여 전송토록 했습니다.
  다음날 밤에 진사가 궁궐로 들어와 저에게 말했습니다.
  "달아나는 것이 좋겠소. 어제 내가 지은 시를 보고 대군이 의심하셨으니, 오늘밤 떠나지 않으면 후환이 있을까 두렵소."
  제가 대답했습니다.
  "어젯밤 꿈에 한 사람을 보았는데, 생김새가 영악하였습니다. 그 사람은 스스로 묵돌선우라고 일컬으면서, '이미 오래 된 약속이 있었기 때문에 장성(長城) 아래서 기다린 지 오래도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놀라 잠에서 깨어났는데, 아무래도 꿈의 징조가 상서롭지 않습니다. 낭군께서는 이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진사가 말했습니다.
  "허망한 꿈속의 일을 어떻게 믿을 수가 있겠소?"
  제가 말했습니다.
  "그가 장성이라고 한 것은 궁궐의 담장이요, 그가 묵돌이라고 한 것은 노비 특입니다. 낭군은 이 노비의 속내를 잘 알고 있는지요?"
  진사가 말했습니다.
  "이 노비는 본래 흉악한 놈이나 나에게는 충성을 다하였소. 오늘 낭자와 이렇듯 좋은 인연을 맺게 된 것도 모두 이 노비의 꾀 때문입니다. 어찌 처음에는 충성을 바치고, 뒤에 악행을 저지를 리가 있겠소?"
  이에 저는 말했습니다.
  "제가 어떻게 감히 낭군의 말씀을 거절하겠습니까? 다만, 자란은 저와 형제처럼 정이 두텁기 때문에 자란에게 알리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저는 즉시 자란을 불러와, 세 사람이 삼발처럼 둘러앉았습니다. 제가 진사의 계획을 자란에게 말하자, 자란이 크게 놀라 꾸짖으며 말했습니다.
  "서로 즐긴 지 오래 되어서 이제 스스로 화를 빨리 부르려고 하는 것이 아니냐? 1, 2개월 서로 사귀는 것만으로도 충분한데, 어떻게 사람으로서 차마 담을 넘어 달아나는 짓을 저지르려고 하느냐? 주군이 너에게 마음을 기울이신 지 이미 오래 되었으니 그것이 떠날 수 없는 첫째 이유요, 부인이 사랑하심이 매우 깊으니 그것이 떠날 수 없는 둘째 이유요, 화가 양친(兩親)에게 미칠 것이니 그것이 떠날 수 없는 셋째 이유요, 죄가 서궁 사람들에게까지 미칠 것이니 그것이 떠날 수 없는 넷째 이유이다. 게다가 천지가 곧 하나의 그물인데, 하늘로 오르고 땅속으로 들어가지 못한다면 달아나 어디로 가려고 하느냐? 혹시 붙잡히게 된다면 그 화가 어찌 네 한 몸에만 그치겠느냐? 꿈의 징조가 상서롭지 못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만약 꿈이 길조(吉兆)였다면 너는 기꺼이 가려 했더냐? 네가 할 일은 마음을 굽히고 뜻을 억누르며, 정절을 지키고 편안히 앉아서 하늘의 뜻에 귀를 기울이는 것뿐이다. 네가 점점 나이가 들어 늙게 되면 주군의 은혜와 사랑이 점차 느슨해 질 것이다. 이러한 형편을 보고 있다가 칭병(稱病)하고 오래도록 누워 있으면, 주군께서 반드시 고향으로 돌아가라 할 것이다. 이때 낭군과 함께 손을 잡고 돌아가 백년해로(百年偕老)하는 것보다 좋은 계획이 없으리라. 이러한 생각은 하지 않고 감히 도리에 어긋난 꾀를 내니, 네가 누구를 속이며 하늘마저 속이려 하느냐?"
  진사는 일이 성사되지 않을 줄 알고 탄식하며 눈물을 머금은 채 궁궐 밖으로 나갔습니다.
  하루는 대군이 서궁의 수헌에 앉아 계시다가 왜철쭉이 활짝 핀 것을 보고, 시녀들에게 각기 오언 절구(五言絶句)를 지어서 바치라고 명령했습니다. 시녀들이 지어서 올리자, 대군이 크게 칭찬하여 말했습니다.
  "너희들의 글이 날마다 점점 나아지고 있어서 매우 기쁘다. 다만 운영의 시에는 님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나타나 있다. 지난번 부연시(賦煙詩)에서도 그러한 마음이 희미하게 엿보였는데 지금 또 이러하니, 네가 따르고자 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김생의 상량문에도 말이 의심스러운 데가 있었는데, 네가 생각하는 사람이 김생 아니냐?"
  저는 즉시 뜰로 내려가 머리를 조아리고 울면서 말했습니다.
  "지난번 주군께 처음 의심을 사게 되자마자 저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했었습니다. 그러나 제 나이가 아직 20도 되지 않은 데다가 다시 부모님도 뵙지 못하고 죽는 것이 매우 원통한지라, 목숨을 아껴 여기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또 의심을 받게 되었으니, 한 번 죽는 것이 무엇이 아깝겠습니까? 천지의 귀신들이 죽 늘어서 밝게 비추고 시녀 다섯 사람이 한 순간도 떨어지지 않고 함께 있었는데, 더러운 이름이 유독 저에게만 돌아오니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못합니다. 제가 이제야 죽을 곳을 얻었습니다."
  저는 즉시 비단 수건을 난간에 매어 놓고 스스로 목을 메었습니다. 이때 자란이 말했습니다.
  "주군께서 이처럼 영명(英明)하시면서 죄 없는 시녀로 하여금 스스로 사지(死地)로 나가게 하시니, 지금부터 저희들은 맹세코 붓을 들어 글을 쓰지 않겠습니다."
  대군은 비록 화가 많이 났지만, 마음속으로는 진실로 제가 죽는 것은 바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자란으로 하여금 저를 구하여 죽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런 뒤 대군은 흰 비단 다섯 단(端)을 내어서 다섯 사람에게 나누어주면서 말했습니다.
  "너희가 지은 시들이 가장 아름답기에 이것을 상으로 주노라."
  이때부터 진사는 다시는 궁궐을 출입하지 못하고 집에 틀어박힌 채 병들어 눕게 되었습니다. 눈물이 이불과 베개에 흩뿌려졌으며, 목숨은 한 가닥 실낱같았습니다.

  (중략 : 김진사는 운영과 함께 도망하여 살 것을 결심하고 특의 계교를 따라서 운영의 보화를 궁 밖으로 운반한다. 하지만 특은 그 보화를 몰래 숨긴 후, 김진사와 운영의 관계를 소문낸다.)

  이 말이 전파되어 궁중으로 들어가 대군에게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대군은 크게 화가 나서 남궁 사람들에게 서궁을 수색하게 하니, 제 의복과 보화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대군은 서궁의 시녀 다섯 사람을 붙잡아 뜰 가운데 세우고, 눈앞에 형장(刑杖)을 엄히 갖춘 다음 명령을 내려 말했습니다.
  "이 다섯 사람을 죽여서 다른 사람들을 경계하라."
  대군은 또 곤장을 잡은 사람에게 지시하여 말했습니다.
  "곤장 수를 헤아리지 말고 죽을 때까지 때려라."
  이에 우리 다섯 사람이 말했습니다.
  "한 마디 말만 하고 죽기를 원합니다."
  대군이 말했습니다.
  "무슨 말이던지 그간의 사정을 다 털어놓도록 해라."
  은섬이 말했습니다.
  "남녀의 정욕은 음양의 이치에서 나온 것으로 귀하고 천한 것의 구별이 없이 사람이라면 모두 다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희는 한 번 깊은 궁궐에 갇힌 이후 그림자를 벗하며 외롭게 지내왔습니다. 그래서 꽃을 보면 눈물이 앞을 가리고, 달을 대하면 넋이 사라지는 듯하였습니다. 저희들이 매화 열매를 꾀꼬리에게 던져 쌍쌍이 날지 못하게 하고, 주렴으로 막을 쳐서 제비 두 마리가 같은 둥지에 깃들지 못하게 하는 것도 다름이 아닙니다. 저희 스스로 쌍쌍이 노니는 꾀꼬리와 제비를 부러워하고 질투하는 마음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한 번 궁궐의 담을 넘으면 인간세상의 즐거움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저희가 궁궐의 담을 넘지 않는 것은 어찌 힘이 부족하며 마음이 차마 하지 못해서 그러하겠습니까? 저희들이 이 궁중에서 꾀할 수 있는 일은 오로지 주군의 위엄이 두려워 이 마음을 굳게 지키다가 말라죽는 길뿐입니다. 그런데도 주군께서는 이제 죄 없는 저희들을 사지(死地)로 보내려 하시니, 저희들은 황천(黃泉) 아래서 죽더라도 눈을 감지 못할 것입니다."
  비취가 초사(招辭)를 올려 말했습니다.
  "주군께서 보살펴 주신 은혜는 산보다 높고 바다보다도 깊습니다. 저희들은 감격스러움과 두려움에 오로지 글짓기와 거문고 연주만을 일삼고 있을 따름입니다. 이제 씻지 못할 악명이 두루 서궁에까지 이르렀으니,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못하게 되었습니다. 오로지 엎드려 바라건대, 사지에 빨리 나가고 싶을 뿐입니다."
  자란이 초사를 올려 말했습니다.
  "오늘의 일은 죄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크니, 마음속에 품은 생각을 어떻게 차마 속이겠습니까? 저희들은 모두 항간(巷間)의 천한 여자로 아버지가 대순도 아니며 어머니는 이비도 아닙니다. 그러니 남녀의 정욕이 어찌 유독 저희들에게만 없겠습니까? 천자인 목왕도 매번 요대의 즐거움을 생각했고, 영웅인 항우도 휘장 속에서 눈물을 금하지 못했는데, 주군께서는 어찌 운영만이 유독 운우지정(雲雨之情)이 없다 하십니까? 김생은 곧 우리 세대에서 가장 단아한 선비입니다. 그를 내당(內堂)으로 끌어들인 것은 주군의 일이었으며, 운영에게 벼루를 받들라 한 것은 주군의 명이었습니다. 운영은 오래도록 깊은 궁궐에 갇히어 가을달과 봄꽃에 매번 성정(性情)을 잃었고, 오동잎에 떨어지는 밤비에는 애가 끊는 듯 고통스러워했습니다. 그러다가 호남(豪男)을 한 번 보고서 심성(心性)을 잃어버렸으며, 마침내 병이 골수에 사무쳐 비록 불사약이나 월인의 재주라 할지라도 효험을 보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운영이 하루 저녁에 아침 이슬처럼 스러진다면, 주군께서 비록 측은한 마음을 두시더라도 돌이켜보건대 어떤 이익이 있겠습니까? 저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김생으로 하여금 운영을 만나게 하여 두 사람에게 맺힌 원한을 풀어주신다면, 주군의 적선(積善)이 이보다 큰 것이 없을 것입니다. 지난날 운영이 훼절(毁節)한 것은 죄가 저에게 있지 운영에게 있지 않습니다. 저의 이 한마디 말은 위로는 주군을 속이지 않고 아래로는 동료를 저버리지 않았으니, 오늘의 제 죽음 또한 영광스러울 것입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주군께서는 제 몸으로써 운영의 목숨을 잇게 해주십시오."
  옥녀가 초사를 올려 말했습니다.
  "서궁의 영광을 제가 이미 함께 했는데, 서궁의 재난을 저만 홀로 면하겠습니까? 곤강에 불이 나서 옥석구분하였으니, 오늘의 죽음은 제가 마땅히 죽을 곳을 얻은 것입니다."
  제가 초사를 올려 말했습니다.
  "주군의 은혜는 산과 같고 바다와 같습니다. 그런데도 능히 정절을 고수(苦守)하지 못한 것이 저의 첫 번째 죄입니다. 지난날 제가 지은 시가 주군께 의심을 받게 되었는데도 끝내 사실대로 아뢰지 못한 것이 저의 두 번째 죄입니다. 죄 없는 서궁 사람들이 저 때문에 함께 죄를 입게 된 것이 저의 세 번째 죄입니다. 이처럼 세 가지 큰 죄를 짓고서 무슨 면목으로 살겠습니까? 만약 죽음을 늦춰 주실 지라도 저는 마땅히 자결할 것입니다. 처분만 기다립니다."
  대군은 우리들의 초사를 다 보고 나서, 또다시 자란의 초사를 펼쳐 놓고 보더니 점차 노기(怒氣)가 풀리었습니다.
  이때 소옥이 무릎을 꿇고 울면서 아뢰었습니다.
  "지난날 완사를 성내(城內)에서 하지 말자고 한 것은 제 의견이었습니다. 자란이 밤에 남궁에 와서 매우 간절하게 요청하기에, 제가 그 마음을 불쌍히 여겨 여러 사람의 의견을 배척하고 따랐던 것입니다. 그러니 운영의 훼절(毁節)은 죄가 제 몸에 있지 운영에게 있지 않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주군께서는 제 몸으로써 운영의 목숨을 이어 주십시오."
  대군의 분노가 점차 풀어져서 저를 별당에 가두고, 그 나머지 사람은 모두 풀어주었습니다. 그날 밤 저는 비단 수건에 목을 메어 스스로 죽었습니다.
  진사가 붓을 들고 운영이 옛 일을 술회한 대로 기록하니, 그 내용이 매우 상세하였다. 두 사람은 서로 마주 보면서 슬픔을 억제하지 못하였다. 한참 후 운영이 진사에게 말했다.
  "이 이하는 낭군께서 말씀하십시오."
  이에 진사가 운영의 뒤를 이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운영이 자결한 이후 궁중 사람들 가운데 어머니를 잃은 것처럼 통곡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통곡 소리가 궁문 밖까지 들렸으며, 저 역시 그 소리를 듣고 오랫동안 기절하고 말았습니다. 집안 사람들이 장차 초혼과 발상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살리고자 애를 써서 저는 날이 저문 뒤에야 겨우 깨어났습니다. 바야흐로 정신을 차리고 나서야 이미 모든 일이 끝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부처께 공양을 드리기로 한 약속을 저버릴 수는 없었습니다. 저는 저승에 있는 혼백이나 위로하고자 운영이 남긴 금비녀와 거울, 그리고 나의 문방제구(文房諸具)를 다 팔아서 쌀 40석을 마련했습니다. 이것으로 청량사에 올라가 불공(佛供)을 드리려고 했는데 마땅히 믿고 부릴 만한 하인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특을 불러 말했습니다.
  "내가 지난날의 죄를 다 용서할 테니, 이제 나를 위해 충성을 다 하겠느냐?"
  특이 엎드려 울면서 대답했습니다.
  "제가 비록 사리(事理)에 어둡고 둔하지만 또한 목석(木石)은 아닙니다. 제 한 몸이 지은 죄는 머리털을 다 뽑아도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데, 이제 용서를 해주셨습니다. 이는 썩은 나무에서 잎이 나고 백골(白骨)에서 살이 돋는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제가 어떻게 감히 진사를 위해 목숨을 바치지 아니하겠습니까?"
  제가 말했습니다.
  "내가 운영을 위해 제물을 갖추고 부처님께 공양을 드려 소원을 빌고자 하는데, 믿고 맡길 사람이 없다. 네가 가지 않겠느냐?"
  특이 말했습니다.
  "삼가 교시(敎示)를 받들겠습니다."
  특은 즉시 절로 올라가 삼일 동안 볼기를 두드리며 누워 있다가 스님을 불러 말했습니다.
  "40석이나 되는 쌀을 어떻게 모두 불공을 드리는데 쓸 수 있겠느냐? 이제 술과 고기를 많이 마련해 널리 속객(俗客)들을 불러들여 대접하는 것이 마땅하리라."
  때마침 어떤 시골 아낙네가 지나가고 있었는데, 특이 강제로 겁탈하고 함께 승당(僧堂)에 들어가 유숙(留宿)했습니다. 그리고 이미 수십 일이 지났는데도 재를 베풀 뜻을 보이지 않자 절의 스님들이 모두 분개하였습니다. 건초일 되어서 여러 스님들이 특에게 말했습니다.
  "불공을 드리는 일은 시주(施主)가 중요합니다. 시주가 이처럼 불결하면 불공을 제대로 드리기 어려우니, 맑은 냇물에서 목욕하여 몸을 깨끗이 한 후에 예(禮)를 행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특이 어쩔 수 없이 나아가 물로 대충 몸을 씻고 들어와 불전(佛前)에 무릎을 꿇고 빌었습니다.
  "진사는 오늘 빨리 죽고, 운영은 내일 다시 살아나서 특의 배필이 되게 해주십시오."
  특이 3일간 밤낮으로 발원(發願)한 말은 오로지 이것뿐이었습니다. 그러고서도 특은 돌아와서 저에게 말했습니다.
  "운영 각시가 반드시 살아날 방도를 얻을 것입니다. 재를 베풀던 날 밤에 제 꿈에 나타나, '지성으로 불공을 드려주시니 감사함을 견디기 어렵습니다.'라고 말하더니, 절하며 울었습니다. 절 스님들의 꿈에도 모두 그러했답니다."
  저는 그 말을 믿었습니다.
  때마침 괴황지절이 되었습니다. 저는 비록 과거를 볼 생각은 없었으나 공부를 빙자하고 청량사로 올라갔습니다. 그곳에 며칠 머물면서 특이 행한 일을 자세히 듣고 그 분함을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또 특을 어떻게 할 수도 없었습니다. 저는 목욕재계(沐浴齋戒)하고 불전에 나아가 백배(百拜)한 뒤, 머리를 조아려 향불을 올리고 합장하여 빌었습니다.
  "운영이 죽을 때 했던 약속을 불쌍해서 차마 저버릴 수가 없어 특이라는 노비에게 지성으로 재를 베풀어 명복(冥福)을 빌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특이 기도했다는 말을 들으니 패악(悖惡)하기 그지없어, 운영이 남긴 소원은 모두 허사로 돌아갔습니다. 그래서 제가 감히 다시 축원하옵니다. 세존(世尊)이시여! 운영이 다시 살아나 제 배필이 되게 해주시어, 운영과 저로 하여금 후세에서는 이러한 원통함을 면하게 해주십시오. 세존이시여! 노비 특을 죽이고 쇠로 된 칼을 씌워 지옥에 가두십시오. 세존이시여! 진실로 이 같은 소원을 들어주시면 운영은 비구니가 되어 열 손가락을 사르고 20층 금탑(金塔)을 지을 것이며, 저는 중이 되어 오계를 지키고 큰 사찰 3개를 창건하여 그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저는 빌기를 마치고 일어나 백배한 뒤 머리를 조아리고 나왔습니다. 그런 지 7일만에 특은 함정에 빠져서 죽었습니다. 이때부터 저는 세상일에 뜻이 없어 목욕재계하고 새 옷으로 갈아입은 뒤 조용한 방에 누웠습니다. 4일 동안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지내다가 한 번 길게 탄식을 하고 마침내 일어나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