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오신화 - 용궁부연록

금오신화 - 용궁부연록

  송도의 천마산 한가운데 용추가 있으니 이름은 표연이라 하였다. 조정에서는 이 곳에 때맞추어 제사를 지냈다.
  그 옛날에 한생이라는 뛰어난 문사가 있었다.
  어느 날 한생에게 푸른 옷을 입고 두건을 쓴 관원 두 사람이 하늘에서 내려와 뜰 앞에 엎드려 말하였다.
  "표연에 계신 용왕님의 분부로 선생을 맞으려고 왔습니다."
  한생이 그들의 안내로 천리준마를 타고 용궁에 이르니 용왕이 뜰 아래 내려와 맞았다. 그가 용왕의 안내로 대궐 위에 앉았을 때 문지기가 아뢰었다.
  "손님이 또 오십니다."
  용왕이 나와 맞았다. 그들은 신이었다. 세 신이 자리에 앉고 차가 한 차례 돌고 난 다음 용왕이 말하였다.
  "내 무남독녀의 화촉을 밝히기 위하여 누각을 짓게 되었는데 건축재는 다 갖추었으나 거기 모자라는 것이 있으니 그게 상량문이오. 소문에 의하면 선생은 재주가 누구보다도 뛰어났다 하기에 특별히 멀리서 초청했으니 나를 위하여 상량문을 지어 주시기 바라오."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벼루와 붓대와 비단 한 필이 나왔다. 한생이 곧 일어나 붓에 먹을 찍어 줄줄 써 내려가니 구름과 내가 얽힌 듯하였다.
  부부 화락하여 백년 복록을 누리고 금슬이 서로 화하여 황족이 만세에 뻗게 해 달라는 것이 그 골자였다.
한생이 그것을 용왕께 바치자 용왕은 크게 기뻐하고 그것을 세 신에게 보이니 손님들도 감탄해 마지않았다. 용왕은 세 신을 한생에게 소개하였다. 한 분은 조강신이요, 한 분은 낙하신이요, 한 분은 벽란신이라는 것이었다. 이어서 술이 들어오고 아름다운 여신 십여명이 들어오고 풍악과 잔치가 벌어졌다.
  잔치가 끝나자 한생은 용왕의 허락을 받아 용궁을 두루 구경한 후 용왕께 하직 인사를 드렸다. 이에 용왕은 산호반 위에 깨끗한 구슬 두 개와 비단 두 필을 담아서 노자로 주고 나와 전송할 때 세 손님도 함께 하직하였다. 이 때 두 사람의 사자가 용왕의 명령으로 한생을 옹위하는데 그 중 한 사람이 말하였다.
  "제 등에 타십시오. 그리고 눈을 감으시고 반식경만 계십시오."
  한생이 그 말대로 하였더니 한 사람이 기구를 가지고 선도하는데 흡사 허공 위로 나는 듯하였다. 오직 바람과 물소리뿐이었다. 그러나 이윽고 소리가 끝나자 눈을 뜨니 한생은 자기 방에 드러누워 있는 것이었다. 밤은 오경이나 되었는데 급히 품속을 뒤져 보니 아까의 그 구슬과 비단이 있었다. 한생은 그것을 깊이 간직하고 남에게 보이지 않았다.
  그 후 한생은 이 세상의 명리 같은 것은 꿈에도 생각지 않고 명산에 들어가니 그가 언제 죽었는지 아무도 알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