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보, '슬견설(蝨犬說)'

이규보, '슬견설(蝨犬說)'

 <작품 읽기>
 
  어떤 손(客)이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어제 저녁엔 아주 처참(悽慘)한 광경을 보았습니다. 어떤 불량한 사람이 큰 몽둥이로 돌아다니는 개를 쳐서 죽이는데, 보기에도 너무 참혹(慘酷)하여 실로 마음이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맹세코 개나 돼지의 고기를 먹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어떤 사람이 불이 이글이글하는 화로(火爐)를 끼고 앉아서, 이를 잡아서 그 불 속에 넣어 태워 죽이는 것을 보고, 나는 마음이 아파서 다시는 이를 잡지 않기로 맹세했습니다."
  손이 실망하는 듯한 표정으로,
  "이는 미물(微物)이 아닙니까? 나는 덩그렇게 크고 육중한 짐승이 죽는 것을 보고 불쌍히 여겨서 한 말인데, 당신은 구태여 이를 예로 들어서 대꾸하니, 이는 필연(必然)코 나를 놀리는 것이 아닙니까?"
하고 대들었다.
  나는 좀 구체적으로 설명할 필요를 느꼈다.
  "무릇 피(血)와 기운(氣)이 있는 것은 사람으로부터 소, 말, 돼지, 양, 벌레, 개미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한결같이 살기를 원하고 죽기를 싫어하는 것입니다. 어찌 큰 놈만 죽기를 싫어하고, 작은 놈만 죽기를 좋아하겠습니까? 그런즉, 개와 이의 죽음은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예를 들어서 큰 놈과 작은 놈을 적절히 대조한 것이지, 당신을 놀리기 위해서 한 말은 아닙니다. 당신이 내 말을 믿지 못하겠으면 당신의 열 손가락을 깨물어 보십시오. 엄지손가락만이 아프고 그 나머지는 아프지 않습니까? 한 몸에 붙어 있는 큰 지절(支節)과 작은 부분이 골고루 피와 고기가 있으니, 그 아픔은 같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물며, 각기 기운과 숨을 받은 자로서 어찌 저 놈은 죽음을 싫어하고 이놈은 좋아할 턱이 있겠습니까? 당신은 물러가서 눈 감고 고요히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하여 달팽이의 뿔을 쇠뿔과 같이 보고, 메추리를 대붕(大鵬)과 동일시하도록 해 보십시오. 연후에 나는 당신과 함께 도(道)를 이야기하겠습니다."
라고 했다.

<요점 정리>
- 작자 : 이규보
- 갈래 : 한문수필, 설(設)
- 성격 : 교훈적, 철학적, 사변적, 풍자적, 설득적, 우의적, 경세적, 극적
- 제재 : 개와 이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
- 주제 : 편견을 배제하고 사물을 대하는 바른 안목의 필요성
  ( ‘손’과 ‘나’ 사이에 견해 차이가 생기는 것은 사고의 기본 전제가 다르기 때문이다. ‘손’은 ‘큰 동물의 죽음만이 불쌍하다.’ 고 보고 있지만, ‘큰 동물이든 작은 동물이든 생명을 가진 것의 죽음은 불쌍’ 하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이러한 인식의 차이가 생기게 된 원인은 ‘손’ 은 피상적인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나’ 는 현상의 이면을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을 갖춘 사람이기 때문이다. 선입견이나 편견을 버리고 현상의 이면을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을 갖춰야 사물의 본질을 올바로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은 이 글이 주는 교훈이다.)
- 출전 :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 구성 : 4단 구성 - 변증법적 전개\
      기: 손님의 생각 (개의 죽음 - 마음이 아픔)
      승: 나의 이야기 (이의 죽음 - 마음이 아픔)
      전: 손님의 생각 (이는 미물(微物)이기에 죽음은 하찮음)
      결: 나의 생각 (생명체의 죽음은 모두 처참함, 왜냐하면 본질적으로 모든 생명체는 같고 소중함)
 
- 구성상의 특징
  ‘설’ 이라는 갈래는 ‘사실+의견’ 또는 ’체험 + 깨달음‘ 의 2단 구성으로 이루어지며, 우의적(寓意的)인 표현을 활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글에서 우의적 표현이 활용된 점, 유추에 의한 사고의 확장과 주제의 보편화가 이루어진 점 등은 설의 일반적인 표현 형식을 따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견해를 논박하는 형식을 통해 주제를 제시한 것은 이 글만의 독특한 점이라고 할 수 있다.

<작품 감상>
  이 작품은 비교와 대조, 연역, 대화에 의해서 전개된다. 비교와 대조는 복합적으로 사용된다. 손님은 개와 이를 대조하지만, 작자는 개와 이를 비교한다. 겉으로 보면, 이 작품은 손님과 작자의 대화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깊이 살피면, 이 작품은 작자가 자신의 모순되는 감정에 대하여 생각하다가, 중요한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을 보여 주는 것으로 생각된다.

  ‘개’ 와 ‘이’ 는 사람을 비유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개’는 주인을 따르고 반긴다. 그러므로 ‘개’는 집권 세력에 속하던 사람을 가리키고, ‘이’는 피지배 계급 - 농민이나 노예 집단을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규보가 살던 시대에는 잦은 정권 투쟁과 반란으로 고급 관리와 군인과 민중이 비참한 죽음을 당하였었다. 이 작품에 표현된 ‘개’의 죽음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지배 계급의 인물이 죽음을 당하는 것을 비유하고, ‘이’ 의 죽음은 부패한 정부의 지나친 착취를 견딜 수 없어, 반란을 일으키고 죽음을 당하던 민중을 비유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를 불에 태워 죽이는 비유는, ‘곡식을 나누어 준다는 말에 속아서 창고 안으로 모인 반란 민중을 정부의 군대가 죽이려하자, 반란 민중이 스스로 불을 내서 타죽은 사건’으로부터 연상되었거나 그러한 사건을 암시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규보가 속한 지배 계급의 사람들은 같은 계급의 인물이 죽는 것을 슬퍼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민중의 죽음에는 무관심하거나 그러한 죽음을 당연하게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이규보는 지배 계급에 속한 인물의 죽음과 백성의 죽음을 같은 것으로 생각한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비유를 통하여 간접적으로 표현하였다. 우리는, 이규보가 이 작품에서 전에 가지고 있던 자신의 태도 - 같은 계급의 죽음을 아깝게 여기고 민중의 죽음에 무관심하던 태도를 반성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자기가 속한 계급의 사람들이 죽는 것은 슬퍼하면서 백성의 죽음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집권 세력의 태도를 비판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출처 : 이대규, '수필의 해석')